[대한광장] ‘지역감정 쟁점화’ 안된다

[대한광장] ‘지역감정 쟁점화’ 안된다

류일상 기자 기자
입력 2000-03-10 00:00
수정 2000-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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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언론이 비틀거리고 있다.지역감정이라는 폭탄을 실은 전투기가 선거언론을 맹폭격하자 신문과 방송의 시사 보도가 온통 그 불길에 휩싸이고 흙먼지를 일으켜 국민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참정권을 행사할국민들은 이성적 능력을 타고 났지만 지역감정의 맹폭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고강도여서 16대 총선의 투표라는 정치적 의사결정을 앞에 놓고 갈팡질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들까지 오직 지역문제로만 모아지는 선거판의 선전 선동에 현기증을 느끼다 못해 쓰러질 지경이다.고향의 물과 흙과 공기로 빚어진 인간이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출신지역에대해 건전한 애착의 표현으로 ‘애향심’을 갖는다.이같은 지역사랑은 숭고하고 이타적이어서 때로는 이 감정이 승화하여 애국심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정서를 과잉 자극하여 득표로 연결하겠다는 계산은 곧 소집단이기주의의 발동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오늘날 우려할 만한지역대결로 치달아 모든 국민을 흙탕물 패싸움에 끌어들이고 국론마저 사분오열로 찢어놓고 있다.총선이 끝난 후에도 후유증을 남기게 될 이 두려운 일이 이번에는 선거운동 초장부터 정당에 따라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매우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영남정권창출론’이나 ‘영도다리 풍덩론’의 주창자나 추종자들은 당초소속정당의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들인데,이들의 대부분은 시민운동 세력에의해 이제는 물러나야 할 구시대 정치인으로 꼽혀진 바 있다.이들은 시민운동이라는 원심력과 소속정당의 구심력이 상호작용하여 개인으로서는 크나 큰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시민운동진영을 질시하거나 때로 어떤색깔을 칠하려 하지만 그에 앞서 미국의 연방대법원 판사들이 반대했음에도불구하고 케네디 대통령이 선거 때의 정치적 시민운동을 적극 지지했던 선진정치 사례를 알아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런데도 하필이면 자신들이 입은 상처를 선거용 정당의 급조와 지역감정의선동을 통한 지역대결 구도를 통해 치유하려는 것은 본인에게 어떠한이익이돌아갈지 모르겠지만 공동체를 위해서는 불행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 되고 매우 큰 손실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보도라는 명분으로 선거언론이 능수능란한 미디어 조정능력을 갖고 뉴스만들기에 노련한 이들 정치인을 추수(追隨)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언론이 공익에의 봉사라는 사명을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미국의 정치언론학자인 에델만은 뉴스가 사회적 리얼리티를 재현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언론이 사건과 뉴스대상이 되는 객체에 대한 신념을 만들고있음을 주목한다.독일의 언론사회학자 노엘르 노이만 교수는 나선형 침묵의학설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를 통해 언론이 선거국면에서 지배적인 여론을 만들 때 그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 쟁점에 대해 침묵을 지키려는 속성이 있음을 밝혔다.

접근시각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두 학자의 이론은 선거시기 언론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논거가 될 만하다.또한 이 이론들의 함축된 의미는 언론이 지역감정 선동과 같은 유사사건의 꽁무니를 뒤쫓지 말고 언론의 공통적 지향목표인 중립성,다원성,계도성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언론기관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보도대상에 대한 가치판단을 통해 정보를 생산하는 사회적 제도인 만큼 흥분을 가라앉히고 또 다시 위기를 맞을지모르는 한국 경제환경을 냉정하게 감시하면서 선거의제를 정책대결로 이끌고사회적 계몽으로 역사발전과 국민통합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지역감정이선거보도의 의제가 되는 한, 충청권의 소지역대결 양상은 물론이고 호남권의싹쓸이도 정치선진화에 제동을 거는 일이 될 뿐이다. 선거언론이 한국민주주의의 미래를 선도하는 정치적 책임을 다시 한번 절감하고 지역감정을 선거쟁점으로 부각시키려는 자들로부터 어서 빨리 독립하기를 바란다.

柳 一 相 건국대교수·언론홍보대학원장
2000-03-1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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