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신문에서 이색적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캘리포니아의 헤드워터숲을 지키기 위해 2000년 된 삼나무 위에 천막을 치고 2년 동안 생활해 온미국 처녀가 마침내 땅을 밟았다는 기사였다.목재회사를 상대로 한 이 싸움을 통해 결국 삼나무를 더 이상 베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이 작지만 위대한 싸움을 접하면서 나는 민다나 시마의 ‘살아남기’에 나오는 인도 여인들의 칩코운동을 떠올렸다.칩코란 ‘끌어안는다’는 뜻으로,히말라야 토착 여성들이 온몸으로 나무를 껴안아 숲을 지킨다는 데서 시작된 이 운동은 생태적 여성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게 개발과 착취의 논리에 맞서 보살핌과 나눔을 통한 새로운 생태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에코페미니즘은 70년대 이후 문명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대안의 하나로 자리잡아 왔다.그러나 그에 대한 소개나 이론적인 작업은 그리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형편이었다.그러기에 에코페미니즘의 입문서 역할을 충분히 해낼 ‘깨어나는 여신’의 출간은 매우 반갑게 느껴진다.단순히서구의 에코페미니즘의이론이나 이론가들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우리의 전통 속에서도 생태적 여성성의 토대와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했다는 점 또한 미덕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1부 ‘깨어나는 여신’에서는 가부장적질서 속에서 오랫동안 억압되어 온 여신의 모델들을 신화를 포함한 문화적토양 속에서 발굴함으로써 거룩한 신성의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여신 부활운동의 주축인 스토옥이란 초현대적 무당이나 12세기 영상운동과 관련해 녹색성인 힐데가르트가 소개되는가 하면,우리 문화 속의 삼신할머니니 바리공주가 여성적 상상력을 통해 복권되기도 한다.
2부 ‘가이아의 과학’에서는 지구를 거대한 생명체로서 바라보는 가이아론을 비롯하여 17세기 과학혁명 이래 영성을 잃어버린 자연의 본래적 질서를회복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만날 수 있다.러브록,린 마굴리스,맥클린톡등이 그들이다.
3부 ‘생태문명의 비전’에서는 생태적 여성주의가 단순한 여성해방이나 계층해방만이 아니라 소수민족,원주민,난민,어린이,노인,실업자 등 억압받는모든사람들과 파괴되어가는 동식물과 대지 전체를 포괄하는 운동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위기가 생태적 위기와 맞물려 있고,전체적인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그 위기를 치유할 수 없다는 인식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듯하다.
다만,남성과 여성이 지속 가능한 삶의 양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훌륭한 동맹자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아있다.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신화를재발견하려는 여성의 노력과,남성주의 신화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남성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그 씨줄과 날줄의 만남을 위해 여신들은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희덕 시인
이렇게 개발과 착취의 논리에 맞서 보살핌과 나눔을 통한 새로운 생태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에코페미니즘은 70년대 이후 문명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대안의 하나로 자리잡아 왔다.그러나 그에 대한 소개나 이론적인 작업은 그리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형편이었다.그러기에 에코페미니즘의 입문서 역할을 충분히 해낼 ‘깨어나는 여신’의 출간은 매우 반갑게 느껴진다.단순히서구의 에코페미니즘의이론이나 이론가들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우리의 전통 속에서도 생태적 여성성의 토대와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했다는 점 또한 미덕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1부 ‘깨어나는 여신’에서는 가부장적질서 속에서 오랫동안 억압되어 온 여신의 모델들을 신화를 포함한 문화적토양 속에서 발굴함으로써 거룩한 신성의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여신 부활운동의 주축인 스토옥이란 초현대적 무당이나 12세기 영상운동과 관련해 녹색성인 힐데가르트가 소개되는가 하면,우리 문화 속의 삼신할머니니 바리공주가 여성적 상상력을 통해 복권되기도 한다.
2부 ‘가이아의 과학’에서는 지구를 거대한 생명체로서 바라보는 가이아론을 비롯하여 17세기 과학혁명 이래 영성을 잃어버린 자연의 본래적 질서를회복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만날 수 있다.러브록,린 마굴리스,맥클린톡등이 그들이다.
3부 ‘생태문명의 비전’에서는 생태적 여성주의가 단순한 여성해방이나 계층해방만이 아니라 소수민족,원주민,난민,어린이,노인,실업자 등 억압받는모든사람들과 파괴되어가는 동식물과 대지 전체를 포괄하는 운동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위기가 생태적 위기와 맞물려 있고,전체적인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그 위기를 치유할 수 없다는 인식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듯하다.
다만,남성과 여성이 지속 가능한 삶의 양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훌륭한 동맹자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아있다.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신화를재발견하려는 여성의 노력과,남성주의 신화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남성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그 씨줄과 날줄의 만남을 위해 여신들은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희덕 시인
2000-02-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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