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가는 천년, 오는 천년

[대한광장] 가는 천년, 오는 천년

박종순 기자 기자
입력 1999-12-30 00:00
수정 199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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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린더’의 저자 데이비드 유윙 던컨은 “우리는 달력의 사람들이다.현대인들은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를 위해 살기 때문에 현재에 안주하지 못한다.이것은 자연의 거대한 순환에 따라 땅을 일구고 살다 죽어간 우리 조상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다”라면서 “그러나 캘린더는 우리가 이룩한 축복이자 저주이다”라고 했다.아침마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출근시간에 쫓기는 사람들,빼곡하게 들어찬 달력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에게캘린더는 축복이자 저주일 수도 있다.

금세기 마지막 캘린더의 뒷장을 넘기는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데 없다.그리고 2000년의 캘린더를 벽에 거는 마음 역시 미묘하기 그지없다.춘향전의 한대목이 떠오른다.“무정한 게 세월이라.소년 행락 깊은들 왕왕이 달라가니,이 아니 광음인가,천금준마 잡아타고 장안 대도 달리고저,구추단풍잎 지듯이 서나서나 떨어지고,새벽하늘 별 지듯이 삼오삼오 스러지니 가는 길이 어드멘고”.덧없이 가는 세월의 무상을 읊은 노래 구절이다.

벽걸이시계 초침은 멈출 수 있으나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시계는 멈춰도시간은 서지 않기 때문이다.우리네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천년 해가저물고 새 천년의 해가 떠오르고 있다.새 천년 새해를 맞기 위해 동해안으로 30만 인파가 몰릴 것이라 하고 세계 명승지는 1년 전에 예약이 이미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새 천년 새해야말로 구경삼아 맞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21세기 사전’을 쓴 자크 아탈리는 책 서두에서 “찬란하고,환희에 차 있으며,야만스럽고,행복하고,기괴하고,도저히 살 수 없고,인간을 해방시키며,끔찍하고,종교적이면서도 종교 중립적인 사회,21세기는 이런 모습일것이다”라고 했다.21세기란 도대체 종잡을 수도 없고 예견이 불가능한 그런 세기라는 얘기다.

21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세계인구는 80억을 넘어설 것이고,기술의 진보는 인간 생활양식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며,사람들은 1년중 100일은 일을 하고 100일은 연구를,그리고 남은 100일은 여행과 여가로 보내게 될 것이라고자크 아탈리는 예견하고 있다.새 천년은 유토피아도 아니고 동화 속에 나오는 환상의 세계도 아니다.급하고 강한 도전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며,초속적 변동이 우리를 어지럽게 만들 것이다.

도전에 대한 응전,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지 않는 한 개인도,집단도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그러기에 국가는 국가대로 새 천년의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종교,문화,정치 역시 낡고 해어진 추태 그대로 새 천년을 맞을 순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낡은 부대에 새 술을 담으면 부대가 터져 둘 다 버리게 된다”는 성서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성서가 말하는 새 부대는 사람을 뜻한다.사람이 새롭게 되는 것,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새부대가 되는 것이다.새 천년,새 역사를 담고 요리하고 관리하는 주체는 사람이다.그래서 제도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고 권력구조가 바뀌어도 사람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새 역사는 금방 때묻고 추한 역사로 전락하고 만다.

지칠 줄 모르는 부정의 고리들,중단 없는 부패의 사슬들,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리들,그리고 그것들 때문에 몰락한 숱한 사람들의처참한 모습들,그리고 그것들을 지켜보면서도 악의 사슬을 절단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그것은 사람의 심성이 달라지지 못했기 때문이다.부단한 자기수양과 도덕훈련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엄격한 법적 통제와 규제로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그러나 그것은 한시적이며 본질적 접근법이 못된다.도덕은 타락하면더 큰 사회악을 양산할 수 있고 법이 정도를 벗어나면 악법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가장 위대한 힘은 신앙이다.신앙은 인간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키고 삶의 현장을 변화시킨다.단,그 신앙은 건전한 신앙이어야 하며 올곧은 신앙이어야 하며 바른 신앙이어야 한다.가는 천년,오는 천년의 문턱에서 변화되어 가는 사람들의 숨결소리가 듣고 싶다.

朴鍾淳 충신교회 담임목사
1999-12-3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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