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학계에서 미개척지대로 지칭되고 있는 영역이 시대사 연구이다.서양의 역사연구나 기록이 정치사 중심에서 시대사,생활사로 다양화되고 있는 반면 우리의 역사연구는 주로 왕조사·정치사·사건사 등에 치우친 감이 없지않다.
한국 사학계에서 최초로 현대사(해방이후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51) 교수는 최근 ‘조봉암과 1950년대(상·하)’를 펴냈다(역사비평사펴냄).이 책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법살(法殺)된 이후 정치학계,역사학계 모두에서 연구가 미진했던 진보정치인 죽산 조봉암(曺奉岩)의 정치역정을 1950년대라는 시대사와 맞물려 연구한 것으로 금년 6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죽산 조봉암전집’과 함께 조봉암 연구의 쌍벽으로 평가할만 한 책이다.
상권은 이승만 정권의 극우 반공체제가 구축되던 시점에서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정면으로 맞서 평화통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르짖으며 ‘반공’ 일색의 한국땅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진보정치인 조봉암’의 정치역정을 통해 당시대를재조명하고 있다.
해방과 남북한의 정권수립에 뒤이은 6·25전쟁으로 시작된 1950년대는 1910년대,일제말기 만큼이나 암울한 시기였다.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는 극에달해 있었으며 사회는 총체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그러나 이 시기에그같은 현상을 거부하면서 혁신·진보세력이 태동하였는데 그 정점에 선 인물이 바로 조봉암이었다.
조봉암이 내건 평화통일론은 겉모습은 미국·유엔의 입장과 같은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북진통일론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냉전·극우반공체제에 남북간의 긴장과 적대의식을 해소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이승만 정권하의 반공이데올로기는 체제유지·강화를 위한 것이었는데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은 이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조봉암을 두고 ‘역풍(逆風)의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조봉암과 진보당이 공산주의도,자본주의도 아닌 ‘제3의 길’로 주창했던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의 계획화·국유화를 중심으로 전개하였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진보세력이 이같은 노선을 취한 근본원인이 무엇인가를 규명하고 있다.
‘피해대중과 학살의 정치학’이란 부제가 붙은 하권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1950년대에 자행된 양민학살문제와 부역자 처리 등 전후 처리문제를 본격 제기하고 있다.특히 부역자 처리문제 등은 박원순 변호사 등 몇 사람의 연구성과가 있을 뿐 거의 공백지대로 남겨진 분야여서 이번 저자의 문제제기는학계의 신선한 자극으로 평가할만 하다. 양민학살문제의 경우 97년 ‘거창양민학살특별법’이 제정된 이래 최근 국회에서 ‘제주4·3사건특별법’이 추가로 제정된데다 지난 9월 ‘노근리사건’이 사회문제로 제기돼 학계의 연구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남한 전역에서 자행된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은 그동안 일부사건을 제외하고는 학계의 주목을 받아오지 못했다. 저자는 “제주4·3학살,거창양민학살 등을 제외하면 그외의 주민집단학살과 부역자 진상파악은 초보적 단계에 있다”고 진단하고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우리의 학살문제에 대해서 당국과 국민들이 침묵하는 것은이해할 수없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한국 사학계에서 최초로 현대사(해방이후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51) 교수는 최근 ‘조봉암과 1950년대(상·하)’를 펴냈다(역사비평사펴냄).이 책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법살(法殺)된 이후 정치학계,역사학계 모두에서 연구가 미진했던 진보정치인 죽산 조봉암(曺奉岩)의 정치역정을 1950년대라는 시대사와 맞물려 연구한 것으로 금년 6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죽산 조봉암전집’과 함께 조봉암 연구의 쌍벽으로 평가할만 한 책이다.
상권은 이승만 정권의 극우 반공체제가 구축되던 시점에서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정면으로 맞서 평화통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르짖으며 ‘반공’ 일색의 한국땅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진보정치인 조봉암’의 정치역정을 통해 당시대를재조명하고 있다.
해방과 남북한의 정권수립에 뒤이은 6·25전쟁으로 시작된 1950년대는 1910년대,일제말기 만큼이나 암울한 시기였다.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는 극에달해 있었으며 사회는 총체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그러나 이 시기에그같은 현상을 거부하면서 혁신·진보세력이 태동하였는데 그 정점에 선 인물이 바로 조봉암이었다.
조봉암이 내건 평화통일론은 겉모습은 미국·유엔의 입장과 같은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북진통일론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냉전·극우반공체제에 남북간의 긴장과 적대의식을 해소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이승만 정권하의 반공이데올로기는 체제유지·강화를 위한 것이었는데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은 이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조봉암을 두고 ‘역풍(逆風)의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조봉암과 진보당이 공산주의도,자본주의도 아닌 ‘제3의 길’로 주창했던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의 계획화·국유화를 중심으로 전개하였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진보세력이 이같은 노선을 취한 근본원인이 무엇인가를 규명하고 있다.
‘피해대중과 학살의 정치학’이란 부제가 붙은 하권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1950년대에 자행된 양민학살문제와 부역자 처리 등 전후 처리문제를 본격 제기하고 있다.특히 부역자 처리문제 등은 박원순 변호사 등 몇 사람의 연구성과가 있을 뿐 거의 공백지대로 남겨진 분야여서 이번 저자의 문제제기는학계의 신선한 자극으로 평가할만 하다. 양민학살문제의 경우 97년 ‘거창양민학살특별법’이 제정된 이래 최근 국회에서 ‘제주4·3사건특별법’이 추가로 제정된데다 지난 9월 ‘노근리사건’이 사회문제로 제기돼 학계의 연구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남한 전역에서 자행된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은 그동안 일부사건을 제외하고는 학계의 주목을 받아오지 못했다. 저자는 “제주4·3학살,거창양민학살 등을 제외하면 그외의 주민집단학살과 부역자 진상파악은 초보적 단계에 있다”고 진단하고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우리의 학살문제에 대해서 당국과 국민들이 침묵하는 것은이해할 수없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1999-12-2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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