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그 날’

[데스크칼럼]‘그 날’

김재성 기자 기자
입력 1999-12-20 00:00
수정 1999-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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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라디오에서 생소한 노래가 한 곡 흘러나왔다. [한 밤의 꿈은 아니리/오랜 고통 다 한 후에…그 아픈 추억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아니었으리/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암울했던 시절,감옥 가기를 별로두려워하지 않던 사람들 사이에 불리던 노래였다.음악이 끝난 후 아나운서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80년대 운동권 애창곡,‘그 날이 오면’이었습니다.과연 그 날은 왔는지,아니면 아직도 우리가 그 날을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97년 12월 19일 아침,평소 이 노래를 즐겨 부르던 사람들은 감격했다.특정인의 대통령 당선이 그들이 목 터져라 부르던 ‘그 날’의 전부는 아니지만정권교체는 61년 5월 쿠데타 이후 실종된 민주주의의 부활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아나운서가 “지금이 그 날인지…모르겠다”고 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특히 2년 전 남다른 감격을 맛보았던 사람일수록 헷갈리고 있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를 ‘독재’‘언론탄압’‘관치경제’라며 비난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의미의 불만과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한다.국민의 정부의 개혁 의지와 속도,개혁의 성과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노래속에 담긴 ‘그 날’은 영원한 미완의 꿈일 수도 있다.마땅히 그래야 인류에게 미래가 있다.모든 사람들이 현실에 만족해 버리면 역사가진보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렇다.다만 80년대 학생들에게 ‘그 날’은 인류의 보편적 꿈이 아니라 ‘민주화’로 압축되는 눈앞의 절실한 소망이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그토록 열망하던 민주화로 인해 발목이 잡혀있다.

민주적 제도와 절차가 총풍,세풍,고문 등 구악의 상징적 사건의 청산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다.청산의 대상인 바로 그들이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제도와 절차를 십분 활용 내지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악명 높은 고문 기술자를고문 없이 조사하느라 배후규명은 부지하세월이고 무탄무석의 원칙을 고수하느라 공권력이 시위대에게 얻어맞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이를 두고 과거 민주적 절차를 예사로 유린했던 사람들은 민주적 원칙을 고수하는 국민의정부를 비웃고 능멸하려 든다.

바로 그것이다.민주주의를 유린한 사람들까지도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의 보호를 받는 세상이 우리가 기다리던 ‘그 날’이 아닌가.개혁이 더디더라도민주적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우리는 민주적 원칙이 무시된,개혁을 빙자한폭력을 뼈아프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옷 로비 의혹 사건,파업유도 사건도 ‘그 날’을 노래한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이 사건으로 정부는 신뢰에 손상을 입은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에서 희망을 발견한다.역설이 아니다.한보,수서 등 과거 대형사건에는 으레 거액의 뇌물이 개재돼 있었다.그에 비해 이번 사건은 기껏해야 밍크코트 한벌을 샀는지,받았는지의 논란 속에 결국 되돌려줬다는 것이 핵심이다.더 중요한 것은 최순영씨 부부가 대한민국의 힘있는 모든 사람에게 로비를 시도했으나 끝내 실패했다.만약 이들의 로비가 성공했더라면 이번 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이것이 희망의 근거다.

검찰총장 부인이 밍크코트에 마음이 흔들린 일로 그 남편과 남편의 ‘잘 나가던’ 후배가 신세를 망치고정부 여당이 수세에 몰려 있으니 세상은 참 많이 달라졌다.그래도 우리의 ‘그 날’을 기다리는 노래는 계속돼야 한다金在晟 편집부국장 jskim@
1999-12-2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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