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산도 타고 사람도 타고

[외언내언] 산도 타고 사람도 타고

임춘웅 기자 기자
입력 1999-11-15 00:00
수정 1999-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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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다 물이 들어 하늘까지 젖는데/골짜기 능선마다 단풍이 든 사람들/그네들 발길따라 몸살하는 가을은/눈으로 만져다오 목을 뽑아 외치고/산도 타고 바람도 타고 사람도 타네”(우이동 시인들의 합작시 ‘북한산 단풍’중에서) 산도 타고 길도 타고 사람도 타는 계절이다.설악산과 지리산 오대산 월악산 단풍은 이미 고비를 넘겼고 계룡산 팔공산 한라산 속리산 가야산 무등산 내장산의 단풍이 아직도 자태를 뽐내고 있다.더구나 요즘 들어서는 가로수들마저 빨갛게,노랗게 익어 가을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단풍이 하늘에 젖는 계절이 오면 사람들은 문득 세월을 돌아보고 자기를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다.올해엔 유독 비가 많았다.질금 질금 꼬리를 문 궂은비 때문에 단풍이 예년처럼 곱지는 않았다.그렇다고 모든 단풍이 병든 것은아니다.살펴보면 계곡속엔 아직도 사람의 혼을 빨아들이는 청아한 단풍이 숨겨져 있다.

특별히 금년엔 금강산 단풍이 우리의 가을에 보태어졌다.풍악은 어언 반세기나 우리에게 잊혀져 있던 가을이다.어느새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풍악보다 설악을 생각하고 내장산을 말한다.풍악산은 그만큼 우리의 가을에서 멀리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금강산이 이제 누구나 볼 수 있는 산이 됐다.세월이 세상을 바꿔놓고있는 것이다.얼마전 풍악산 귀면암 어귀에는 한 잎의 반은 핏빛으로,반은 짙푸른 청록으로 채석된 잎사귀들을 가득 안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휘엉청 늘어져 있었다.그 신비함에,그 황홀함에 취해 한참이나 발길을 옮길 수 없었다.

만물상 천선대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허기를 느꼈다.등산길 옆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먹을 것을 챙기다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이 온통 시뻘겋게 달아 있었다.가슴이 뛰어왔다.한동안이나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금강산을 남겨놓고 뱃길에 올랐는데 다음날 새벽 일행중 한 분이 금강산쪽을 올려다보며 이런 말을 했다.“세계의 명승들이 실은 사진보다 못하거든.

그런데 말이야 금강산은 달라.실물이 더 좋아.난생 처음으로 사진보다 실물이 더 좋은 경치를 만났구먼.그래서 금강산인가 보지.” ‘언론대책문건’이란 것으로 온 나라가 소란스럽다.모두가 핏발을 세워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있는데 구경하는 백성들은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소리가 커서 왕왕대는 스피커처럼 무슨 소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다들 무엇에 홀려 있다.분명 광기이고 집단 히스테리다.가을은,노란 거리의 은행잎들은 해맑은 옛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는데….

어서 마지막 단풍구경이나 가야지./임춘웅 논설위원
1999-11-1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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