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채비율 200%규제와 ‘大宇 교훈’

[기고] 부채비율 200%규제와 ‘大宇 교훈’

조동근 기자 기자
입력 1999-11-15 00:00
수정 1999-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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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의 붕괴로 차입경영의 성장신화는 이제 막을 내리게 됐다.특히 올연말은 재벌이 부채비율을 200%로 낮추어야 할 시한이기에 대우사태가 던져주는 충격은 그만큼 더 크다고 하겠다.정책과 현실이 따로 맴돌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IMF 이후 정부의 재벌에 대한 부채비율 축소요구 자체는 매우 타당한 것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다.총론적인 방향설정은 옳았으나 정책추진 과정에서 혼선을 빚었다.정부는 충분한 논리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99년 말까지 부채비율 200% 축소’를 마치 긴급경제명령인 양 재벌에 요구했으며 정치권은재벌의 정책수용 여부를 통치력의 시금석으로 간주하고 재벌에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정부가 독려한 만큼 재벌의 재무구조 건전성이 높아진 것 같지는 않다.부채비율 200% 축소 지시는 별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다.정부의 정책의지가 강할수록 역설적으로 재벌에는 ‘종이호랑이’로 비춰지기 십상이다.상황논리에 입각한 그리고 시장원리를 우회한 정치적주문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재벌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구체적으로 부채비율은 기업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며 부채비율 200% 고집은 경직된 정책발상이라는 것이다.지시적 규제는 반드시 ‘규제회피행위’를 유발하게 된다.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순환출자를 통한 부채비율 낮추기가 규제회피 행위의 전형인 것이다.

순환출자란 3개 이상의 계열사가 연쇄적으로 출자해 자본금을 늘려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A사가 100억원의 자본금을 갖고 우선 B사의 유상증자에 참여,50억원을 출자한다.B사는 C사에 30억원을 출자하고 C사가 다시 A사에 10억원을 출자한다.이렇게 되면 A사는 자본금은 110억원으로 증가하게 되나 실제 자본금은 100억원이며 나머지 10억원은 ‘거품’이다.계열사간의 거미줄 같은 재무적 연결망을 감안할 때,순환출자 규모나 내역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단서로써 우회적으로 순환출자의 가능성을 짐작할 수있다.98년 30대 재벌그룹의 출자총액은 17조7,000억원에서 99년 4월 29조9,000억원으로 무려 12조2,000억원이 증가했으며,계열사에 대한 출자분은 10조9,000억원으로 전체 출자증가분 가운데 89%에 달하고 있다.이는 재벌이 순환출자를 통해 가공자본을 늘려 인위적으로 부채비율을 짜맞춰 왔음을 반증하는 것이며,사전적 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와 국민을 우롱한 것이다.

한편 정부의 저금리정책도 문제가 있다.시장금리가 떨어져 이자부담이 크게 경감된 상황에서 어느 재벌이 부채규모를 줄이겠는가? 저금리정책으로 주식시장은 활황을 맞이했고,재벌은 증자를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는 척’했을뿐이다.IMF 직후의 고금리정책이 부적절했던 것처럼 무리한 저금리정책도 재벌의 채무조정을 미루는 결과를 초래했다.결국 시장을 우회한 지시적 규제로는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없다.

부채비율이 높으면 그만큼 도산 위험이 높아진다.대우사태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도산확률이 높은 기업은 당연히 가산금리를 물어야 하며,고부채로 경기변동에 대한 대응력이 약한 기업은 적대적 기업사냥(M&A)의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퇴출돼야 한다.따라서 자율적 부채조정의 관건은행정명령이 아니라자금시장,경영권지배 시장,도산관계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정비돼 있는가다.

이제 정부가 할 일은 재벌의 고부채 비율을 초래하게 한 제도적 유인구조의 왜곡을 바로잡아 ‘시장의 힘’에 의해 부채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책추진의 합리성과 유연성을 제고하는 일이다.또한 재벌은 부채조정이 공익차원이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한 일임을 명심해야 하며 대우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시장은 더이상 과다차입경영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부채비율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생존전략인 것이다.대우그룹의 부침과정에서우리는 실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조동근 명지대교수.경제학 dkcho@wh.myongji.ac.kr
1999-11-1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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