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정호승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서동철 기자 기자
입력 1999-10-27 00:00
수정 1999-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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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49)을 일컬어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인’이라고 한다.그런데 그 ‘아름답다’거나,‘서정적’이라는 단어는 한국문단에서는 때론 ‘아름답기만 하다’거나,‘서정적이기는 하다’는 비아냥거림이 되기도 한다.

정호승 역시 그런 인식의 피해자라고 할만하다.그렇게 된 이유는 지난 97년 펴낸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가 ‘너무 많이’ 팔렸기 때문이라는것이다.아예 안팔리거나 적당히 팔리면 인정받다가도,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순간부터 문학성을 의심하는 것이 우리 문단의 이상한 현실이다.

그런 정호승이 일곱번째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작과 비평사)를 냈다.이 시집 역시 앞선 ‘사랑하다가…’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이라고 ‘비판’받을 만 하다.

이 시집에서 느껴지는 감수성은 왜 그의 시가 호응 받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그의 시는 결코 독자로 하여금 머리를 감싸안고 고뇌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고뇌를 고뇌 답지 않게 맑고 따뜻하게,때로는 희화적으로 극복한 결과 도달한 지점은 극단적인 고뇌를 통해 다다른 곳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다.그것이 그를 소녀들의 취향에 영합하기만 하는 대중시인과 거리를 두게 하는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문학성을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 조차,이 시집이 가진 긍정적 의미의 대중성을 부각시키려하기 보다는,애써 대중성을 부정하는 시편에서의미를 찾으려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어쩌면 그것은 시인에 의해 어느 정도의도된 것인지도 모른다.이른바 문학성을 증명해보여야 자신의 본령인 서정성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는….

경주박물관 앞마당/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있는 화단가/목잘린 돌부처들나란히 앉아/햇살이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자기머리를 얹어본다 소년부처다/누구나 일생에 한번씩은/부처가 되어보라고/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정호승이 던지는 화두(話頭)는 ‘소년부처’처럼 어려운 법이 없다.짝을 이루는 ‘햇살속으로’도 마찬가지다.

경주박물관에 가면/몸은 온 데 간 데 없고/돌부처의 머리만 길가에/쓸쓸히앉아있다 나는 어느 여름날/…/그 돌부처의 머리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내 머리를그 자리에 떼어놓고/돌부처의 머리를 내 머리에 얹고는 천천히 길을 걸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경의를 ‘들녁’처럼 간결하면서,훈훈하게 표현하기도어려울 것이다.

날이 밝자 아버지가/모내기를 하고 있다/아침부터 먹왕거미가/거미줄을 치고 있다/비온 뒤 들녘 끝에/두 분 다/참으로 부지런 하시다 한권의 시집에서 이것 이상 어떤 엄청난 것을 읽어낼 수 있을까.오늘 지하철을 타거든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를 읽어볼 일이다.그러다 진짜 눈물이 나면 잠깐 내렸다가,다음 전동차를 타도 좋을 것이다.

서동철기자 dcsuh@
1999-10-2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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