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책읽기의 기술

[대한광장] 책읽기의 기술

김무곤 기자 기자
입력 1999-10-15 00:00
수정 1999-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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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쓰러졌을까?/ 얼마나 많은 벌레들이 집을 잃고/ 햇볕에 말랐을까?// 한 뭉치에 백권씩 이백 뭉치의 책 더미를,아니 나무등걸을/ 숲을/ 천장에 닿을 때까지 쌓는다…// 이 중에 몇 권이 꼭 만날 사람을 만나/ 그를 오랫동안 창가에 혹은/ 길모퉁이에 세워둘까?’(장천권,‘얼마나많은 나무들이’) K군.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대학생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좋은 책을 골라달라는 요청에 오늘 늦게나마 답하게 되었습니다.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 따로 있겠습니까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표어는 그런대로 쓸 만한 말 같군요.날씨는 선선하고 하늘은 푸르고 우리의 정신도 덩달아 고양되는 계절에 조용한 장소에 앉아 좋은 책을 읽는 것만큼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을 느낄수 있는 때는 그리 많지 않겠지요.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읽어보라는 말은 해줄 수가 없군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이,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많은 사람을 만나고 부대껴 본 사람일수록 사람을보는 눈이 넓어지고 깊어지듯이 책읽기 또한 스스로 경험을쌓고 안목을 키워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다만 책과 더 잘 사귈수 있는 기술에 대해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몇 가지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다른 취미도 별로 없고 또 직업상 오랫동안 책과 함께 살다보니 책을 고르고 읽는데에도 그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혹 참고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우선,꼭 필요한 책을 구입할 때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기본적으로 책은 쌉니다.한 권의 좋은 책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지식과정보를 다른 방법으로 얻으려면 그 수십 배,수백 배의 비용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서점에 갈 때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돈을 넉넉하게 가지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돈이 부족하면 간담이 작아져서 정작 필요한 책을 못 사게 되거나 다른 책과 비교해 값이 싸다는 이유로 책을 선택해버리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남이 하는 말을 듣거나,저자의 명성에 속아,또는 겉 표지나 목차의 꾐에 빠져 덜컹 사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 읽어보면 기대와는 전혀 딴판의 것일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그러나,쓰라린 실패의 고통 없이 탁월한 선택의 능력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실패도 안목을 기르기 위한 수업료라고 생각해버리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것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손이 닿는 곳에 두지않아도 좋다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또,남들이 다 읽는다고 해서 자기에게 맞지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식에 비해 내용이 떨어지는 책을 읽는 일도 읽는 시간만큼 손해라고 봅니다.‘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면 그 자리에서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매력적인 이성이 옆자리에앉아 감동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재미없는 영화를 끝까지 볼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단,책을 수면제 대용으로 애용하시는 분들이라면 베고 자기에 알맞은 두께를 가진 책을 고르는 것도 무방합니다.

하나의 주제를 파악하는 데 한권의 책으로 만족하지 말고,같은 주제나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을 여러 권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비슷한 종류의 책을여러권 읽고 나면 좋은 책의 장점이 확연히 눈에 띄고 시각이 좁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을 땐 무엇보다 의심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활자로 인쇄돼있으면 강아지가 짖는 소리도 그럴듯해 보일수 있습니다.고전이나 베스트셀러 중에도 거짓말이나 엉터리주장을 나열해 놓은 책이 얼마든지 있습니다.책을 읽다가 무언가 의심쩍은 대목이 있으면 원전이나 사실 확인을 통해 의문을 끝까지 확인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번역서에는 또 잘못된 번역이나 나쁜 번역이 많습니다.번역서를 읽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을 만나면,자신의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기 전에 오역(誤譯)이 아닌가 의심해보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두서없이 늘어놓은 나의 말들이 참고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을 주지 않았나 걱정되는군요.부디 이 가을에 K군을 더욱 깊게 만들 좋은 책을 만나기를 바랍니다.아,참.가장 중요한 기술을 깜빡 잊고 전하지 못할 뻔했군요.“책읽기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즉시 중지하고 그 일을 할 것”.

金 武 坤 동국대교수·신문방송학
1999-10-1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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