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영화배우 문희의 눈물

[굄돌] 영화배우 문희의 눈물

양윤모 기자 기자
입력 1999-10-14 00:00
수정 1999-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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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젊은 감독과 중견 감독을 만날 때마다‘미워도 다시한번’의 문희를출연시키보라고 권한다.감독들은 한결같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문희’라는배우의 컴백은 김지미 윤정희 엄앵란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한다.

벌써 나이를 들먹이는 것이 부끄럽다.하여튼 10대 초반의 소년이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문희의 눈물을 보았다.그후로 문희가 출연하는 영화만 보면 눈물이 흘러 나왔다.자연인으로 태어나 나의 의식의 최초눈물은 이때가 아닌가.영화를 보는 일은 문화적 의식이고 문화적 의식은 곧성장기 통과의례와도 같다.이 시기의 의식적으로 몸에 배어 있는 눈물 흘리는 습관은 기도의 시간과도 맞먹는다.

간혹 아내와 함께 TV드라마,논픽션 드라마,‘편지’‘약속’같은 영화를 보노라면,결정적인 순간에 아내가 이렇게 말한다.‘또 눈물을 흘리고 있지?’라며 나의 눈가에 자기 얼굴을 갖다댄다.문희의 눈물을 보며 자란 나는 오늘영화평론가가 되었다. 절대 여자를 울리지 말자!이감상주의가 성장하여‘절대 타인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 말자’는 인생관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나는 문희에게 감사한다.많은 여자 배우가 나타나고 사라졌다.반드시 멜로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숱한 여성캐릭터를 연기한 여배우들이 눈물을흘렸건만,유독 문희의 눈물만이 맑게 비쳐지고 내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기능을 하는 걸까.잘 알 수가 없다.그토록 좋아하는 내 인생의 배우 문희를 딱한번 실제로 만나는 기회가 왔다.

‘아,나는 행복하다’라고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그 옛날 스크린에 비친 심상이 그대로 수정처럼 빛나고 있었다.세월과 더불어 들려온 그녀의 인생 곡절 많이 들어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 안에서 태우고 자기를 가꿔온 배우가한국에도 있구나.

8월19일 영상자료원에서 그녀에게 받은 사인을 아내와 두 아이들에게 자랑했다.세월의 먼지가 덮힌 나의 앨범에 그녀의 한복입은 브로마이드를 꽂은지꼬옥 30년만의 경사다.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문희를 사숙하는 나는 행복하다.



[양윤모.영화평론가]
1999-10-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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