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이상용 노동부장관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이상용 노동부장관

이상용 기자 기자
입력 1999-09-22 00:00
수정 1999-09-2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공직에 들어온 이후 재정을 담당하는 부서에 오래 있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내가 전공을 경제학으로 선택한 것이 결코 타고난 심성이나 자질과 전혀 무관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내가 경제학과에 지원한 것은 어떤야망이나 소신에서 비롯된 결정은 아니었다.어쩌면 그것은 가난하고 형제가많았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8남매의 장남이다.

나는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집에서 아주 각별한 대접을 받았다.

억척스럽고 부지런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지만,모두들가난했던 시절이었기에 그 끼니라는 것은 초근목피(草根木皮)나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나에게 ‘더운 밥’을 챙겨주시려고 무던히 애쓰셨고 아버지 역시 남다른 애정을 장남에게 보여주셨다.

내가 춘천에 유학하여 중·고등학교를 다니고,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장남에 대한 아버지의 특별한 배려였음은물론이다.

그러나 장남이라는 존재적 가치는 언제나 나의 가슴 속을 파고드는 ‘예리한 칼날’이었다.

장남으로서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각별한 대접은 바로 내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그것은 어느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어느틈엔가 내 스스로가 알게 되는 ‘장남이라는 짐’의 존재였다.

그 짐은 나에게 ‘어찌하면 우리 집안을 일으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하였던 것 같다.아마도 내가 경제학을 선택한것은 적성에 맞아서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어려운 집안에 보탬이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커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내가 흔들리면 안된다’는 식의 생각이 언제나 마음 속을 떠나지 않으면서 이상적인 장남의 모습으로서 내 행동거지를 결정지었고,한 번 옳다고 뜻을 세우면 확고히 지켜나가는 심성도내가 장남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된 듯하다.

아직도 내가 장남으로서 받는 빛과 그림자는 여전하다.

하지만 이젠 장남이라는 예리한 칼날이 마음속을 그렇게 파고 들지는 않는다.짐은 아직도 존재하고 나의 모습을 결정하지만,이제는 그 짐을 질 줄 아는 법을 배웠기 때문인 것 같다.세월이 흐르면서 말이다.

이상용 노동부장관
1999-09-22 3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