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車興奉 보건복지부장관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車興奉 보건복지부장관

차흥봉 기자 기자
입력 1999-09-18 00:00
수정 1999-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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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17년 만에 다시 소록도를 찾았다.작은 사슴이라는 고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곳에서는 한센병으로 고생한 900명의 우리 이웃들이 살고 있다.

한때 7,000명에 이르던 환자들이 이제는 많이 줄었다.평균연령이 70세에 이르니까 거의 대부분 노인들이다.얼마 있으면 환자들을 보기가 힘들지도 모른다.그러나 한센병 환자들의 한스런 삶의 역사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같다.

소록도를 떠나오던 날,귀와 코가 뭉그러지고 눈이 보이지 않는 한 노인이“장관님! 장관님!” 하고 등 뒤에서 나를 부르던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그 노인의 절규 속에는 한평생 소외받은 인생에 대한 한이 너무나 짙게 배어 있어 얼굴을 마주 대하기가 어려웠다.근 1세기 동안 걸어왔던 질병과 가난의 역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그러나 얼마 후면 그 고통의 역사도 막을 내릴 것이다.

이 소록도에서 살다 세상을 떠난 한센병 환자가 1만명을 훨씬 넘는다.이들아픈 이웃들은 가난과 질병의 시대를 살면서 사용했던 많은 물건들을 남겨두었다.밥솥,식기,수저,동냥할때 쓰던 밥그릇 등 생활용품들 속에는 그들의아픈 숨결이 남아 있다.

탈출을 막기 위해 이마에 찍으려고 만든 낙인은 그들의 고난을 증명해주고있다.일제 치하에서 강제노역할 때 찍은 사진,사랑하는 자녀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애틋하게 바라만 보아야 하는 가슴 아픈 만남을 담은 사진도 있었다.

이들 삶의 자취는 20세기 우리나라의 가난과 질병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어쩌면 이들이 살아온 고통의 삶은 우리가 걸어왔던 지난 사회사를 가장상징적으로,그리고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그것은 이 버려진 삶의 터전에 ‘가난의 역사박물관’을 만드는 일이다.희망과 영광의 역사가 있듯이 절망과 좌절의 역사도 있다.우리는 새 천년을 내다보면서 지난 100년간 우리가 걸어왔던 가난의 아픈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21세기 우리가 선진복지국가를 이루어 모든 국민이 잘 살게 될 때 지난 세기 가난의 역사는 우리 국민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어제는 오늘의 어머니요,오늘은 내일의 아버지라고 했다.한센병 환자들이살아온 고통의 역사를 오늘의 우리를 가다듬고 내일 우리 후손들의 삶을 설계하는 교훈으로 삼았으면 한다.

차흥봉 보건복지부장관
1999-09-18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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