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내가 한 화백의 그림 앞에서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몇세대에 걸쳐 진행된 우리 민족의 가장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 생생하게 형상화된 44m에 이르는 연작 그림은 역사를 자료로만 접했던 나를 고통스런 아픔으로 눈물짓게 했다.
식민지 조국을 떠나 연해주에 정착해 살던 구(舊) 소련지역 거주 한인(속칭고려인)들이 일제와 내통한다는 혐의로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중앙 아시아에 강제 이주된 지 60년이 되던 1997년,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 살고 있는 교포 신순남 화백의 ‘수난과 영광의 유민사-신순남’전시회에 걸려 있던 ‘진혼제(鎭魂祭)’가 바로 그 연작이다.‘진혼제’는 “열차를 타고 강제이동중 죽어간 노약자와 어린이들,도착지에 팽개쳐진 카레이스키들의 모습,삭막한 황야,낯선 땅에서 느꼈던 두려움,정착 과정,그리고 황무지를 개척해비옥한 옥토로 일궈낸 카레이스키의 저력”을 대서사시처럼 장엄하게 그려내고 있었다.연해주에서 강제 이주 당할 당시 신순남 화백의 나이 9살이라 했다.
얼마 전 국회에서 통과된 ‘재외동포법’(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관한 법률)은 원래 ‘한민족 혈통을 가진 모든 동포들’에게 내국인과 같은정치·사회·경제적 권리를 인정해주기 위해 제정작업이 시작되었다.그러나소수민족의 민족주의나 분리독립에 경계심을 갖고 있는 중국 등 일부 국가의압력 때문에 그 대상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로 법률안이 바뀌었다. 그 바람에 550만 전체 해외동포 중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전에 이주한 중국동포와 옛 소련동포,무국적 재일동포를 비롯한 280만 동포가 법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버리고 말았다.이 법은 처절한 고통과 절망의역사 속에서도 280만 동포들이 간직해온 민족혼까지 저버린 것은 아닌지.신순남 화백은 ‘진혼제’ 시리즈가 미완성의 작품이라 했다.‘미래의 희망’을 훗날 채워야 할 여백으로 남겨놓았다면서.그 여백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채워질지…….부끄러운 마음에 신순남 화백의 ‘진혼제’가 아픔으로 다시떠오른다.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식민지 조국을 떠나 연해주에 정착해 살던 구(舊) 소련지역 거주 한인(속칭고려인)들이 일제와 내통한다는 혐의로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중앙 아시아에 강제 이주된 지 60년이 되던 1997년,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 살고 있는 교포 신순남 화백의 ‘수난과 영광의 유민사-신순남’전시회에 걸려 있던 ‘진혼제(鎭魂祭)’가 바로 그 연작이다.‘진혼제’는 “열차를 타고 강제이동중 죽어간 노약자와 어린이들,도착지에 팽개쳐진 카레이스키들의 모습,삭막한 황야,낯선 땅에서 느꼈던 두려움,정착 과정,그리고 황무지를 개척해비옥한 옥토로 일궈낸 카레이스키의 저력”을 대서사시처럼 장엄하게 그려내고 있었다.연해주에서 강제 이주 당할 당시 신순남 화백의 나이 9살이라 했다.
얼마 전 국회에서 통과된 ‘재외동포법’(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관한 법률)은 원래 ‘한민족 혈통을 가진 모든 동포들’에게 내국인과 같은정치·사회·경제적 권리를 인정해주기 위해 제정작업이 시작되었다.그러나소수민족의 민족주의나 분리독립에 경계심을 갖고 있는 중국 등 일부 국가의압력 때문에 그 대상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로 법률안이 바뀌었다. 그 바람에 550만 전체 해외동포 중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전에 이주한 중국동포와 옛 소련동포,무국적 재일동포를 비롯한 280만 동포가 법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버리고 말았다.이 법은 처절한 고통과 절망의역사 속에서도 280만 동포들이 간직해온 민족혼까지 저버린 것은 아닌지.신순남 화백은 ‘진혼제’ 시리즈가 미완성의 작품이라 했다.‘미래의 희망’을 훗날 채워야 할 여백으로 남겨놓았다면서.그 여백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채워질지…….부끄러운 마음에 신순남 화백의 ‘진혼제’가 아픔으로 다시떠오른다.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1999-09-0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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