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 칼럼] 단군에 관한 무지 또는 편견

[김삼웅 칼럼] 단군에 관한 무지 또는 편견

김삼웅 기자 기자
입력 1999-08-24 00:00
수정 1999-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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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초 경기도 일원의 초등학교에 세워놓은 단군(檀君)좌상의 목이 잘려나간 사건을 계기로 ‘단군논쟁’이 학계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있다.

단군논쟁의 핵심은 실존인물이냐 신화 또는 설화냐,국조(國祖)냐 특정종교또는 우상이냐,민족사관이냐 식민사관 또는 왜곡이냐를 둘러싸고 끝없는 논쟁이 가능하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세계 어느나라건 건국신화가 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 ‘단군신화’는 전통있는 민족국가임을 자부하게 하고 ‘국조단군’은 한겨레 한핏줄의 동포의식을 일깨우는 구심체 역할을 해왔다.

민족이 외세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했을때 단군의 국조론이 제기되면서 민중의 에너지를 한데 모을 수 있었다. 고려시대 원나라의 침략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단군이 역사적 실체로 등장한 이래 조선조 청나라 지배시대,한말과 일제치하에서 단군에 관한 연구와 관심이 절정을 이루었다. 민중은 국조 또는건국신화의 단군을 통해 민족적 일체감을 형성하고 국난극복의 구심체로 삼고자 하였다.

일제가 합병후 단군관련 서적을 압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럴수록 우국지사들은 더욱 은밀하게 책을 출판하면서 ‘단군의 후예’라는 일체감을 심고자 했다. 2년전 한 여론조사는 “국민의 70%가 통일후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구심적 복원에 단군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다종교국가이면서도 그동안 종교 사이에 큰 대립이나 갈등을 빚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단군상 훼손 뿐만 아니라 타종교의 상징물을 훼손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고 있다. 광신도들이 불상을 훼손하고 성당에 방화도서슴지 않았다. 민족문화의 하나인 장승의 수난도 이어졌다. 편협한 신앙이빚은 불미스런 행동이다. 단군을 우상숭배라고 비판하는 것은 종교계의 해묵은 논란거리이지만 자칫하면 이것이 종교간의 불화와 분쟁의 불씨로 번질 소지도 없지 않아 우려된다.

단군의 실체를 ‘신화’로 격하시킨 것은 일본 어용사학자들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22년 훈령 제64호를 통해 조선사편수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우리 역사의 왜곡 날조를 일삼았다. 단군을 신화로 만들고 조선사의 첫머리를 한사군에서 시작함으로써 단군과 단군조선의 역사를 삭제하여 일본의 역사와 대등하게 연조(年條)를 조작했다.

심지어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단군신화가 불가의 승려나 무격참위가(巫覡讖緯家)들이 날조한 이야기라면서 신화가 아닌 전설이라고 격하시켰다. 그는 ‘삼국유사’ 정덕본을 영인하면서 ‘단군고기(檀君古記)’에 나오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바꿔서 출간했다. “옛날에 환국(桓國)이 있었다”는 내용을 ‘환인’으로 바꿔서,고조선의 존재를없애고 환인과 환웅을 신화적·전설적 존재로 둔갑시킨 것이다.

단군의 실체(또는 신화)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유사한 ‘물적 자료’가 남아 있어서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다.중국 산동성가상현의 자운산에 위치한 무씨사(武氏詞) 석실의 화상석(畵像石)이 단군신화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 화상석의 그림은 구름을 사이에 두고 하늘 위의 날개 달린 인물들이 땅위에 하강하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천부인(天符印)이나 삼위태백(三危太伯) 등은 중국판 단군신화라는 것이다.

일본 구주대학 나카노 하다모시 박사는 ‘단군신화와 일본고대종교’란 논문에서 “일본 고대신앙의 구석구석에서 단군신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면서 “일본의 민속 신도(神道)인 수험도(修驗道)에는 현재까지도 단군신화의 요소가 상당히 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카노는 수험도의 문헌에 나오는 ‘환웅’‘백산(白山)’ 등의 표현을 예로 들었다.

단군에 대한 역사적 연구나 평가와 ‘단군신앙’은 별개의 문제다. 10월 3일을 개천의 국경일로 삼고 기리는 나라에서 일부 종교인들이 단군을 우상숭배라고 배척하는 행위는 역사에 대한 무지이거나 편견이다.국가가 위난일 때이면 국조로서 받들어지고 평시에는 고대의 역사로 탐구되어온 ‘단군’을일부 종교인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하여 다른 종교인들이 이를 배척한다면 다종교 국가의 평화공존을 깨뜨리는 것은 물론 민족적 구심체를 훼손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1999-08-2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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