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로 찾아가 출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해마지않는 것이 연극계의 미풍이다. 서로 직업이 비슷한 처지의 측근들은 음료수나 가벼운 선물을 사오기도 하지만 긴 연습기간과 제작상의 고생스러움을 감안하여 금세 시들어버리는 꽃다발보다는 ‘화분대’나 ‘꽃값’으로 10만∼20만원을 내놓기도 한다. 가물에 콩나듯이 정·재계인사가 초대되는 경우에는 단원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회식비 명목으로 100만원을 내놓거나 공연이 끝난후 뒤풀이를 책임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사교의 폭이 넓은극단대표나 몇몇 배우에 한한 일일뿐 일상사는 아니다.
격려금이란 문자 그대로 어려운 여건에서 좋은 무대를 꾸며준 연극인들에게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정·재계 인사들이 내놓는 격려금이란 자신이 ‘연극 애호가’임을 과시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뇌물’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손숙(孫淑)환경부장관이 러시아 연극공연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로부터 받은미화2만달러(약 2,400만원)의 격려금 파문이 확산되더니 장관 취임 한달만에 물러났다. 각 신문은 그가 무대 위에서 공손히 절하며 격려금을 받는 사진과 함께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이 아니고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받은 대가성 없는 돈이라 하더라도 공직자의 신분에서 거액의 격려금을 받은 일은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어쨌든 격려가 왜 하필 돈봉투인가. 선배의 공연에 가고 싶어도 10만∼20만원의 격려금을 준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공연장 주변의 불만은 자주 있어왔다. 또한 관행이라면 널리 어디서나 누구나 누려온 일이어야 하는데 그런단체가 “도대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이도 있다. 한국연극협회에 등록돼있는 극단은 서울에만 102개 단체, 막상 연극을 공연하는 단체는 30개 미만이다. 1년에 한번이라도 막을 올리기 위해 극단대표들은 기업의 협찬을 얻거나 관련부처의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한다. 그러나 협찬금 규모란 기껏해야 팸플릿·포스터나 플래카드 제작, 단체 초대권을 구입하는 데 그치는 일이 허다하다.이번 파문으로 인해 어려울때 위로해주는 격려금 관행이 어느 정도 얼어붙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격려금에 연연하기보다,극단은 당당하게 기업에 지원을 요청하고 기업은 문화예술 지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토가 아쉽다. 스스로 즐거워서 자청하는 것이 아니라 권유에 의한 부담스러운 관행은 고쳐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李世基 논설위원 sgr@]
격려금이란 문자 그대로 어려운 여건에서 좋은 무대를 꾸며준 연극인들에게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정·재계 인사들이 내놓는 격려금이란 자신이 ‘연극 애호가’임을 과시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뇌물’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손숙(孫淑)환경부장관이 러시아 연극공연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로부터 받은미화2만달러(약 2,400만원)의 격려금 파문이 확산되더니 장관 취임 한달만에 물러났다. 각 신문은 그가 무대 위에서 공손히 절하며 격려금을 받는 사진과 함께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이 아니고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받은 대가성 없는 돈이라 하더라도 공직자의 신분에서 거액의 격려금을 받은 일은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어쨌든 격려가 왜 하필 돈봉투인가. 선배의 공연에 가고 싶어도 10만∼20만원의 격려금을 준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공연장 주변의 불만은 자주 있어왔다. 또한 관행이라면 널리 어디서나 누구나 누려온 일이어야 하는데 그런단체가 “도대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이도 있다. 한국연극협회에 등록돼있는 극단은 서울에만 102개 단체, 막상 연극을 공연하는 단체는 30개 미만이다. 1년에 한번이라도 막을 올리기 위해 극단대표들은 기업의 협찬을 얻거나 관련부처의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한다. 그러나 협찬금 규모란 기껏해야 팸플릿·포스터나 플래카드 제작, 단체 초대권을 구입하는 데 그치는 일이 허다하다.이번 파문으로 인해 어려울때 위로해주는 격려금 관행이 어느 정도 얼어붙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격려금에 연연하기보다,극단은 당당하게 기업에 지원을 요청하고 기업은 문화예술 지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토가 아쉽다. 스스로 즐거워서 자청하는 것이 아니라 권유에 의한 부담스러운 관행은 고쳐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李世基 논설위원 sgr@]
1999-06-2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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