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20)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20)

임헌영 기자 기자
입력 1999-04-22 00:00
수정 1999-04-2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정공채 長詩 '미8군의 차'(中) 초봄에 어울리지 않는 정시인의 복장을 넌지시 보던 수사관은 오늘 구속될걸 어떻게 알고 미리 준비해 왔느냐면서 너스레를 떨었고,이 말에 그는 아예 징역살이를 각오하게 되었다.아니나 다르랴,보통 때같으면 12시면 점심 먹고 1시에 다시 오라고 했는데 이날은 정오가 지나도 여전히 수사를 계속하기에 마무리 지어서 검찰로 송치하려나 보다고 단단히 마음을 조였다.

그런데 1시 경 수사가 끝나고 절차대로 서류에다 날인을 하자 수사관은 “이제 집에 가도 좋습니다”고 말했다.

어리둥절한 정시인에게 수사관은 그간 문인 4명에게 이 시에 대한 견해를 자문한 결과 한 분만 반미적인 시라고 했고 나머지 분은 민족주체성을 서정적장시로 엮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했더라면서,정치적 참여시를 쓰지 말 것을 당부하며 “기소 중지” 처분이 내려졌다고 알려 주었다.바로 그 네 분이란김용호·김현승·조연현·조지훈이었음이 나중 밝혀졌다.

이런 사건이 항용 그렇듯이 풀려나는 것으로 명쾌하게 결말이 나는 게 아니라 그 공포감은 일생동안 지배하기 마련인데,그건 환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당장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된다.

바로 자신은 누군가로부터 항상 ‘감시를 당한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도록 강박관념에 사로 잡히고 마는 것이다.

정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다.그에게도 ‘감시’가 따랐는데,그게 정확히 언제까지 어떻게 추진되었는지는 시인 자신이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아마 심리학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항상 감시 당하고 있다”는 고정관념이 굳어질 때까지 그렇게 하는지도 모른다.

정시인에게도 매주 1회 일체의 활동을 조사해 가는 절차가 따랐고,이로 말미암아 그는 분방했던 시인적인 삶으로부터 나이답지 않는 노장적(老莊的)세계관으로 다가서는 계기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전후 한국 시문학에서는 보기 드문 현실 비판의식을 지닌 ‘우중(雨中)의 다리 위를 거닐며’(‘사상계’ 1960.9)같은 작품을 써왔으나 이 사건을계기로 시도,인생행로도,문단에서의 처신도 깡그리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시인은 지금 이렇게 회고한다.

“만약 내가 그런 사건을 겪지 않았다면,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생길 무렵 누군가로부터 가입 권유를 받았을 때 아마 참여했을 것입니다” 이 한마디는 ‘미8군의 차’로 정시인이 겪은 인생역정을 상징한다.이 작품은 계속 묻혀 있다가 1979년에야 첫 시집 ‘정공채 시집’을 내면서 게재했지만 그땐 이 장시를 주목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시끄러울 때였고,한국시도‘미8군의 차’ 정도의 현실비판은 훌쩍 뛰어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양식을 지닌 비평가라면 이 장시가 오늘에도 유효하며 문학사적으로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필화사건이 언제나 그렇듯이 발표하고 한참 동안 잠잠하다가 어디선가 불쑥 불거져 나오기 마련인데,‘미8군의 차’도 그랬다.정공채 시인은 이 작품을 2년간 치밀한 메모와 구상으로 벼르다가 1963년 정초 휴가 때 3일간 꼬박매달려 200자 원고지 156매를 완성시켜 그 해 마지막 달 ‘현대문학’지에발표했었다.

국내 비평가들로 부터는 별 반응이 없었던 이 시가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아 번역되기 시작했다.당시 일본문단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녔던 ‘신일본문학’을 비롯하여,오다 마코도(小田實)가 주관했던 ‘제3세계의 문학’과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에 이르기까지 무려 11종에 이르는 언론매체들이 이 시를 소개,게재했다.일본 문단에서 한국의 시가 이렇게 선풍을 일으킨 것은 그 뒤 김지하가 등장할 때까지는 없었던 일이었다.

전 31장으로 구성된 ‘미8군의 차’는 ‘장시’란 명칭으로 분류되었는데,통상 장시는 서사시적 구성을 갖추기 마련이었다.정시인은 이 시를 통해 외세에 의한 민족분단의 고통과 주체성의 상실을 노래하고자 했다.

그러자면 한 주인공을 내세워 서사구조를 만들면 가장 쉽고 재미있게 전개될 것이라고 여겼으나 그럴 경우에는 시인 자신의 의도가 너무 쉽게 노출되기때문에 서사시가 아닌 ‘서정적 장시’로 쓸 것을 결심했다.말하자면 뚜렷한 사건 전개가 없이 정황과 분위기에 따라 서정성을 가미하여 그 서정성이 독자로 하여금 민족 주체성을 느끼게 만든다는 장치였다.

서울시의회, 에너지산업발전 유공자 의장 표창 수여

김규남 서울시의회 의원(에너지전략특별위원장·송파1)은 에너지 산업 발전과 공익 증진에 기여한 유공자에게 서울시의회 의장 표창을 수여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표창은 에너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기 위한 것으로, 에너지 산업 분야 종사 전문가와 연구기관 종사자 등 전국 40여 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에너지경제연구원 김기웅 팀장을 비롯한 소속 수상자들은 에너지 산업 전반에 대한 정책 연구와 분석을 수행하고, 대외협력 강화를 통해 에너지 산업 발전과 공익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 한국수력원자력(주) 박범신 실장 등 에너지 산업 분야 종사 전문가들은 각 에너지 분야에서 오랜 기간 각자 자리에서 전문성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국가 에너지 안정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날 표창 수여식에서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은 “에너지 산업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핵심 분야”라며 “현장과 연구 분야에서 전문성과 책임감으로 에너지산업 발전에 기여해 온 유공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한편, 서울시의회 의장은 서울특별시장과 같이 1000만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장관급 대우를 받는 선출직 공직자로
thumbnail - 서울시의회, 에너지산업발전 유공자 의장 표창 수여

1963년의 한국 문단적 상황으로서는 현실비판 의식을 위한 시로서 최상의 기법이었다 하겠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1999-04-22 1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