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화사한 웃음이 그립다

[대한광장]화사한 웃음이 그립다

박석무 기자 기자
입력 1999-03-24 00:00
수정 1999-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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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온다.정말로 봄이다.춘분이 지났으니 청명에 한식이 아닌가.봄비가축축이 내리더니 화창한 봄볕이 가슴을 설레게 내리쬔다.모진 추위와 설한풍을 이겨낸 인내와 끈기의 힘으로 땅 밑에서 버텨온 초목의 뿌리,그 뿌리의생명력으로 푸른 잎과 붉은 꽃들이 준비되고 있다.그래서 ‘참고 견디는 자에게는 복이 있느니’라고 했으리라.

‘겹겹이 싸인 산(山)이라도 봄바람 오는 길 막지 못한다’(峯未碍春風路,茶山詩)라는 시가 있다.그렇다.아무리 깊은 산속,은자가 숨어사는 산골짜기에도 봄은 오고 마는 것이다.

직장을 잃은 실업자의 아우성이 요란하고 파산한 기업가들의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자연은 말 없이 제 기능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나무 끝이 푸르러지고 화사한 꽃은 피어나고,벌과 나비들은 찾아오고 새가 울고 개울물이 철철대는 봄은 와버렸다.

이런 섭리를 누가 막으랴.이렇게 자연은 헌사롭고 찬란하건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너무도 소란하다.너무도 각박하고 매몰차다.웃음과 여유의틈새도 안 보인다.IMF의 어려움을 누가 느끼지 않으리오마는,돈 때문에 제몸뚱이의 일부를 싹둑 잘라내는가 하면 귀염둥이 남의집 자식을 유괴하여 죽이고,자신의 혈육이나 배우자까지도 서슴없이 죽이며,심지어는 남의 조상 묘소까지 파헤쳐 시체까지 유괴하는 그런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너무도 살벌하다.어려운 형편에 동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죽했으면 그런 짓을 했겠느냐고 생각은 하면서도 거기까지 가서야 인간이 할 일인가라는 한숨을 짓지 않을 수 없다.너무 무섭다.

봄이 오는 뜨락에 서서 인내와 마음의 여유를 회복해보자.‘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녀보라.그러면 단번에 너의 얼굴은 미인이 될 것이다’라는 어떤 시인의 글이 생각난다.백목련·자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진달래와 철쭉개나리까지 꽃사태를 이룰 이 봄만이라도 화사한 웃음을 웃으며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면 어떠리.아름다운 자연의 조화에 감화라도 받듯이,아름다운 새들의 노랫소리에 흥을 타서라도 얼굴에 웃음을 띠고 여유로워질 수 없을까.

추운 겨울을 견디고 새 생명을 잉태하는 초봄처럼 우리도 참고 견디면서 IMF의 어려운 터널을 뚫고 나갈 수는 없을까.괴롭고 불편하고 짜증나고 서러워도 억지로라도 이웃에게 화사한 웃음을 보내고 따뜻한 인사말을 전할 수는없을까.그래서 이 아름다운 봄에 훈훈한 인간사회가 봄동 자라듯이 복원되기를 기원해본다.

공자께서 정말로 어려움에 처한 때가 있었다.제자가“훌륭한 위인에게도 그렇게 곤란한 경우가 있는 겁니까”라고 물었다.그러자 공자께서“그렇다.그러나 훌륭한 사람은 그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며 극복해 가지만어리석은 사람은 어려움에 직면하면 못 견디고 도(道)에 지나친 길로 일탈해 버리는 것이다”고 답변하였다.원문으로 말하면 ‘군자(君子)는 고수기궁(固守其窮)이요 소인(小人)은 궁사람(窮斯濫)’이다.군자는 진실로 그 궁함을 지키고 소인은 궁하면 거기에서 넘쳐 버린다는 내용이다.

천금 같은 말이다.보험금을 타려고 제몸을 자르고 혈육을 죽이는 것이야 지키지 못하고 넘쳐버림이다.남의 조상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유괴함도 넘쳐버린 일이다.이 어려운 시대에 넘치지 않는것이 쉽지야 않겠지만 인간의 도리로서 참고 견디어야지 어쩔 것인가.내가 어려우면 남도 어려운 것이다.서로 돕고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궁함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실직자 노숙자 걸식자 궐식자,모두가 우리의 동포요 이웃들이다.함께 하는어려움은 극복하지만 혼자 하는 어려움은 더욱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다.이봄,이 화사한 꽃의 계절에 이웃과 손을 잡고 함께 가고 밝은 미소를 서로 간에 나누면서 이 어려운 세상을 이겨내야 한다.살벌함·각박함·넘침 같은 일을 모두 줄이고 새롭게 기지개를 켜면서 함께 가보자.

박석무 한국학술진흥재
1999-03-2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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