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판도변화… 순수문학이 뜬다

베스트셀러 판도변화… 순수문학이 뜬다

김종만 기자 기자
입력 1999-03-22 00:00
수정 1999-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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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학 베스트셀러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출판계의 불황으로 대형 베스트셀러가 자취를 감추면서 작품성을 갖춘 순수문학서들이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교보문고·종로서적 등이 집계한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박완서의 창작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창작과비평사),신경숙의 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문학과지성사),황지우 시집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 등이 출간 이래 상위권을 지켜오고 있다.97년과 98년 같은 시기에 김정현의 ‘아버지’·김상옥의 ‘하얀 기억 속의 너’,김종윤의 ‘슬픈 어머니’·김진명의 ‘하늘이여 땅이여’ 등 대중소설이 각각 상위권을 차지했던 것과는 퍽 대조적이다.순수문학이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너무도 쓸쓸한…’은 11만부,‘기차는 7시에…’는 8만부,‘어느날 나는…’은 6만부가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이 책들은 모두 나온지 석달도 되지 않았다.문학서가 이처럼 강세를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출판계의불황으로 대형베스트셀러가 사라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실제로 97년 11월이후 독서계에서 밀리언셀러는 모습을 감췄다.98년 1월에 출간된 ‘하늘이여 땅이여’가 85만부 정도 나가긴 했지만 이를 제외하면 5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또한 IMF 관리체제 이후 독자들의 도서구매 형태가 바뀐 것도 순수 문학서 강세의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유행에 따른 거품독서가 수그러든 대신 제대로 된 작품에 대한 구매가 늘고 있다”는 문학과지성사 채호기 주간의 말처럼 독자들은 화제작가에 휘둘리기 보다는 이미 검증받은 작가들의 작품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가벼움의 미학’으로 무장한 신세대 작가들의 키치적인 면모에 독자들이 식상한 측면도 없지 않다.박완서(68)의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의 인기요인은 그런 신세대 문학과 대척점에 서 있는 작가의 의미심장한 작품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소설집의 표제작 ‘너무도 쓸쓸한…’은 초로의 부인이 아들의 졸업식장에서 안사돈에게 은근한 모욕을 당한 뒤 평소 멋없고 비굴한 인간이라고 경멸하는 남편,그것도 오랫동안 떨어져 산 남편에게 점차 관용을 베풀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우리 시대 소설의 어머니격인 박완서는 이 소설에서 ‘원로’란 이름에 걸맞는 인생살이의 연륜,삶에 대한 성찰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편 각종 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의 약진도 눈여겨 볼만하다.올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박상우의 ‘내 마음의 옥탑방’(문학과지성사),현대문학상을 받은 김영하의 ‘당신의 나무’(현대문학),21세기 문학상을 수상한 전경린의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이수) 등이 그것이다.특히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순문학출판물로는 드물게 해마다 베스트셀러 수위를 기록해왔다.98년수상작품집인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는 38만부나 팔렸다.‘내 마음의 옥탑방’ 역시 10만부가 팔려 침체된 문학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현재시상되고 있는 국내의 문학상은 218개(97년말 기준).문제는 이 많은 문학상의 이름 값을 빌려 판매를 늘리려는 상업출판의 스타시스템이다.

1999-03-2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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