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달 첫 일요일 오후, 황초(黃草) 소슬한 망우리공원 만해 한용운선사 묘소에 엷은 햇살이 꽂힌다.선사 가신지 54년,생애를 조국독립과 불교유신에 바친 선사는 광복을 한해 앞두고 60년의 삶의 나래를 접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조국을‘님’으로 기리며 빼앗긴 님을 찾고자 애태우던 ‘선사님’가시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다.광복된 조국이 아직도 선사를 공원묘지 일우에 방치해온 것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지금 삭발에 장삼 걸치고 폭력 휘두르는 불교계 현상은 더욱 가슴아픈 모습이다.
사바중생은 실업과 생활고에 허덕이고 나라가 온통 환난에 시달리는데 승려들은 광제창생은커녕 법력아닌 폭력 의존의 부끄러운‘소림사혈투’를 계속한다.
부끄럽지 않은가. 석가모니는 ‘유교경(遺敎經)’에서 “부끄러움의 옷은 모든 장식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다.부끄러움은 쇠갈퀴와 같아 사람의 법(法)답지 못함을 다스린다.그러므로 부끄러워하는 생각을 잠시라도 버려서도 안된다.만일 부끄러워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모든 공덕을 잃게될 것이다.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곧 착한 법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짐승과 다름없다”고 질타했다.
조계종단의 일부 승려들이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멀어 야단법석(野壇法席)을 친지 한달,폭력과 기물파손 혐의로 승려 39명에 경찰의 소환장이 나와도,사부대중의 간절한 화합 기원도 아랑곳없다.
만해는 조선불교가 일제와 결탁하여 호국불교의 전통을 잃을 때 ‘불교유신회’를 통해 “진실로 본래의 생명을 회복하고자 할진대 재산을 탐하지 말고 이 재산으로써 민중을 위하여 법을 넓히고 도를 전하는 실제적 수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고 설파했다. 어찌 오늘의 불교계에 던지는 설법,화두는 제외된다 할까.
부처님 가르침에 ‘선불수보(善不受報)’라 했던가.“좋은 일에 어찌 보수가 있을 것이냐”란 뜻,무소득의 경지를 말한다.무소득과 무소유는 바로 불도의 알파요 오메가다.
젊은 나이에 즉위하여 광대무변의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대왕은 늘그막에 “내가 누울 곳은 기껏 이 정도면 족한 것을 그 넓은 땅을 위해 아까운 일생을 바쳤구나”라고 탄식했다 한다.
출가승의 신분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채우려 하는가.만해 선사 가로되,
공(空)은 가히 분별치 못할 뿐만 아니라 분별자체도 또한 공하여 비로소 공이 되느리라. 이로 말미암아 보면 객관적 실재의 공은 없느니라.공이라 하면 어떤 것도 없음을 의미함이니 곧 유형도 없고 따라서 무형도 없음을 공이라 할지라.
나라 어려울 때면 분연히 일어나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호국불교의 전통은 이어져야 한다.원효와 서산과 만해의 정신이 계승돼야 이나라 불교가 산다.
풍란화 매운향내 당신에야 견줄손가
이날에 님 계시면 별도 아니 빛날런가
불토(佛土)가 이의없으니 혼아 돌아오소서.
위당 정인보가 만해 영전에 띄웠던 조사처럼 ‘이날에 님 계시면’오늘의 조계종단 사태를 어찌 볼 것인가.
총독부 건물이 보기싫어 북향한 심우당에서 변절 崔麟에게 절교를 선언하고,최남선이 인사하자 “내 아는 육당은 죽어장송했는데 당신 누구냐”고 물리치며,무소유와 민족적 기개로 불맥을 이은 만해 선사가 오늘 승려들의 행동을 보고 뭐라 하실지,그 해답을 조계종단 승려들께 묻는다.<주필 kimsu@daehanmaeil.com>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조국을‘님’으로 기리며 빼앗긴 님을 찾고자 애태우던 ‘선사님’가시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다.광복된 조국이 아직도 선사를 공원묘지 일우에 방치해온 것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지금 삭발에 장삼 걸치고 폭력 휘두르는 불교계 현상은 더욱 가슴아픈 모습이다.
사바중생은 실업과 생활고에 허덕이고 나라가 온통 환난에 시달리는데 승려들은 광제창생은커녕 법력아닌 폭력 의존의 부끄러운‘소림사혈투’를 계속한다.
부끄럽지 않은가. 석가모니는 ‘유교경(遺敎經)’에서 “부끄러움의 옷은 모든 장식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다.부끄러움은 쇠갈퀴와 같아 사람의 법(法)답지 못함을 다스린다.그러므로 부끄러워하는 생각을 잠시라도 버려서도 안된다.만일 부끄러워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모든 공덕을 잃게될 것이다.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곧 착한 법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짐승과 다름없다”고 질타했다.
조계종단의 일부 승려들이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멀어 야단법석(野壇法席)을 친지 한달,폭력과 기물파손 혐의로 승려 39명에 경찰의 소환장이 나와도,사부대중의 간절한 화합 기원도 아랑곳없다.
만해는 조선불교가 일제와 결탁하여 호국불교의 전통을 잃을 때 ‘불교유신회’를 통해 “진실로 본래의 생명을 회복하고자 할진대 재산을 탐하지 말고 이 재산으로써 민중을 위하여 법을 넓히고 도를 전하는 실제적 수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고 설파했다. 어찌 오늘의 불교계에 던지는 설법,화두는 제외된다 할까.
부처님 가르침에 ‘선불수보(善不受報)’라 했던가.“좋은 일에 어찌 보수가 있을 것이냐”란 뜻,무소득의 경지를 말한다.무소득과 무소유는 바로 불도의 알파요 오메가다.
젊은 나이에 즉위하여 광대무변의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대왕은 늘그막에 “내가 누울 곳은 기껏 이 정도면 족한 것을 그 넓은 땅을 위해 아까운 일생을 바쳤구나”라고 탄식했다 한다.
출가승의 신분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채우려 하는가.만해 선사 가로되,
공(空)은 가히 분별치 못할 뿐만 아니라 분별자체도 또한 공하여 비로소 공이 되느리라. 이로 말미암아 보면 객관적 실재의 공은 없느니라.공이라 하면 어떤 것도 없음을 의미함이니 곧 유형도 없고 따라서 무형도 없음을 공이라 할지라.
나라 어려울 때면 분연히 일어나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호국불교의 전통은 이어져야 한다.원효와 서산과 만해의 정신이 계승돼야 이나라 불교가 산다.
풍란화 매운향내 당신에야 견줄손가
이날에 님 계시면 별도 아니 빛날런가
불토(佛土)가 이의없으니 혼아 돌아오소서.
위당 정인보가 만해 영전에 띄웠던 조사처럼 ‘이날에 님 계시면’오늘의 조계종단 사태를 어찌 볼 것인가.
총독부 건물이 보기싫어 북향한 심우당에서 변절 崔麟에게 절교를 선언하고,최남선이 인사하자 “내 아는 육당은 죽어장송했는데 당신 누구냐”고 물리치며,무소유와 민족적 기개로 불맥을 이은 만해 선사가 오늘 승려들의 행동을 보고 뭐라 하실지,그 해답을 조계종단 승려들께 묻는다.<주필 kimsu@daehanmaeil.com>
1998-12-0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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