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시장경제 병행” 확립/70년대 ‘민족자립’ 중심 대중경제론 주창/작년 著書서 이론 정립… 취임사서 천명
오는 4일로 金大中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는다.서울신문은 金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지금까지 새 정부의 업적을 평가하고 당면 현안과 문제점을 점검하며 향후의 정책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이틀에 걸쳐 연쇄대담,해설,관련자료 등으로 특집을 엮어 싣는다.첫날인 2일은 金대통령의 국정운영철학과 개혁,정치·통일 외교분야를 집중 조명했다.둘째 날인 3일에는 경제분야를 총점검한다.
金大中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운영철학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이론화한 시기를 적시하기는 어렵다.70년대초 그의 머리 속에는 민족적 자립경제,즉 ‘대중경제’가 자리하고 있었다.당시의 재벌과 정부 주도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부정적으로 본 것이다.이 시기는 그에게 있어 ‘민주적 시장경제’의 태동기로 볼 수 있다.이러한 그의 생각은 72년 대통령선거의 공약과 각종 성명서에 응축되어 있다.
金대통령이 시장경제론자로 바뀐 것은 80년대의 격심한 변혁기를 거치면서부터다.반유신투쟁과 투옥,오랜 미국망명생활을 거치면서 자유 시장경제만이 우리의 관치(官治)경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으로 여겼다.시장경제론의 완성은 지난 85년 하바드대가 金대통령의 ‘대중 (참여)경제론’을 출판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그는 여기에서 종래의 배타적이었던 재벌관과 대외차관문제에 일대 수정을 가한다.
그러나 아직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동일 선상의 이론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정치체제는 자유 민주주의,경제운영은 시장경제로 서로 분리된 상태였다고 보는 게 옳다.
두 가치가 한데 묶인 것은 옛 소련과 동구의 붕괴를 보면서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있던 동구와 소련의 몰락 이유를 이들 국가가 민주주의를 하지 않은 데서 찾았다.그는 ‘나의 길 나의 사상’‘한국 민주주의 드라마와 소망’ 등에서 “세계사의 변화는 사회주의에대한 자본주의 승리라기 보다는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독재의 패배”라는 판정을 내리고있다.
두 개념이 한데정리된 것은 지난해 대선전 펴낸 ‘김대중의 21세기 시민경제 이야기’에서다.그리고 곧 취임사를 통해 새 정부 철학으로 국민 앞에 천명하기에 이르른 것이다.그는 이러한 자신의 철학을 90년대 초 모스크바대학 강연과 93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자유민주 지도자회의’ 등에서 발표,세계적인 검증절차를 거쳤고,제2차 ASEM(아시아 유럽 정상회의)에서 세계적 지지를 받았다.‘아시아적 가치’를 주창한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전 수상에 판정승을 거두었다는 그의 언급도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梁承賢 기자 yangbak@seoul.co.kr>
◎취임 100일 주요일지
▲2월25일 제15대 대통령 취임
▲2월27일 여야영수 연쇄회담
▲3월3일 조각발표
▲3월4일 안기부장,기획예산위원장 임명
▲3월6일∼4월9일 육·해·공군 지휘부 인사 단행
▲3월8일 차관급 38명 임명
▲3월11일 제1차 경제대책 조정회의
▲3월27일 제1차 무역투자진흥 대책회의
▲3월28일 시·도지사 접견 및 오찬
▲3월31일∼4월5일 제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참석
▲3월9일∼4월17일 정부 각부 업무보고
▲4월10일 국민회의·자민련 의원 만찬
▲4월20일 경제 6단체장 오찬
▲4월21일 한국노총 지도부 오찬
▲4월22일 민주노총 지도부 오찬
▲4월23일 투자유치를 위한 민·관 공동 경제회의
▲4월27일 중앙 3급이상 공무원 대상 특별강연
▲4월28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부주석 접견 및 오찬
▲4월29일 서울시청 업무보고
▲4월30일 대구시청·경북도청 업무보고
▲5월1일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접견
▲5월10일 국민과의 대화
▲5월14일 주요 사회단체장 오찬
▲5월21일 제1회 정보화 전략회의
▲5월30일 부산 해양의 해 기념식 참석
오는 4일로 金大中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는다.서울신문은 金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지금까지 새 정부의 업적을 평가하고 당면 현안과 문제점을 점검하며 향후의 정책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이틀에 걸쳐 연쇄대담,해설,관련자료 등으로 특집을 엮어 싣는다.첫날인 2일은 金대통령의 국정운영철학과 개혁,정치·통일 외교분야를 집중 조명했다.둘째 날인 3일에는 경제분야를 총점검한다.
金大中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운영철학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이론화한 시기를 적시하기는 어렵다.70년대초 그의 머리 속에는 민족적 자립경제,즉 ‘대중경제’가 자리하고 있었다.당시의 재벌과 정부 주도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부정적으로 본 것이다.이 시기는 그에게 있어 ‘민주적 시장경제’의 태동기로 볼 수 있다.이러한 그의 생각은 72년 대통령선거의 공약과 각종 성명서에 응축되어 있다.
金대통령이 시장경제론자로 바뀐 것은 80년대의 격심한 변혁기를 거치면서부터다.반유신투쟁과 투옥,오랜 미국망명생활을 거치면서 자유 시장경제만이 우리의 관치(官治)경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으로 여겼다.시장경제론의 완성은 지난 85년 하바드대가 金대통령의 ‘대중 (참여)경제론’을 출판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그는 여기에서 종래의 배타적이었던 재벌관과 대외차관문제에 일대 수정을 가한다.
그러나 아직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동일 선상의 이론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정치체제는 자유 민주주의,경제운영은 시장경제로 서로 분리된 상태였다고 보는 게 옳다.
두 가치가 한데 묶인 것은 옛 소련과 동구의 붕괴를 보면서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있던 동구와 소련의 몰락 이유를 이들 국가가 민주주의를 하지 않은 데서 찾았다.그는 ‘나의 길 나의 사상’‘한국 민주주의 드라마와 소망’ 등에서 “세계사의 변화는 사회주의에대한 자본주의 승리라기 보다는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독재의 패배”라는 판정을 내리고있다.
두 개념이 한데정리된 것은 지난해 대선전 펴낸 ‘김대중의 21세기 시민경제 이야기’에서다.그리고 곧 취임사를 통해 새 정부 철학으로 국민 앞에 천명하기에 이르른 것이다.그는 이러한 자신의 철학을 90년대 초 모스크바대학 강연과 93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자유민주 지도자회의’ 등에서 발표,세계적인 검증절차를 거쳤고,제2차 ASEM(아시아 유럽 정상회의)에서 세계적 지지를 받았다.‘아시아적 가치’를 주창한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전 수상에 판정승을 거두었다는 그의 언급도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梁承賢 기자 yangbak@seoul.co.kr>
◎취임 100일 주요일지
▲2월25일 제15대 대통령 취임
▲2월27일 여야영수 연쇄회담
▲3월3일 조각발표
▲3월4일 안기부장,기획예산위원장 임명
▲3월6일∼4월9일 육·해·공군 지휘부 인사 단행
▲3월8일 차관급 38명 임명
▲3월11일 제1차 경제대책 조정회의
▲3월27일 제1차 무역투자진흥 대책회의
▲3월28일 시·도지사 접견 및 오찬
▲3월31일∼4월5일 제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참석
▲3월9일∼4월17일 정부 각부 업무보고
▲4월10일 국민회의·자민련 의원 만찬
▲4월20일 경제 6단체장 오찬
▲4월21일 한국노총 지도부 오찬
▲4월22일 민주노총 지도부 오찬
▲4월23일 투자유치를 위한 민·관 공동 경제회의
▲4월27일 중앙 3급이상 공무원 대상 특별강연
▲4월28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부주석 접견 및 오찬
▲4월29일 서울시청 업무보고
▲4월30일 대구시청·경북도청 업무보고
▲5월1일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접견
▲5월10일 국민과의 대화
▲5월14일 주요 사회단체장 오찬
▲5월21일 제1회 정보화 전략회의
▲5월30일 부산 해양의 해 기념식 참석
1998-06-0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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