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밤발밤’을 아십니까/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발밤발밤’을 아십니까/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이갑수 기자 기자
입력 1998-03-31 00:00
수정 1998-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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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우리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1966년에 쓴 산문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에서 시인 김수영은 ‘수많은 말들이 죽어갔고 수많은 말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탄식하고 있다.시인이 지하에서 올라온다면 과연 오늘의 우리말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한때 국정지표가 되었던 ‘세계화’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외국어가 점점 중요해지는 세상이다.이런 세태를 반영해서인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극성도 이젠 흔한 풍경이 되고 말았다.취직이나 시험에서의 영어 비중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가까이 있는 것은 소홀히 대하기 쉬운 법이라 그런지 우리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국어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생각한다.이런 사정이고 보니 흔히 마주치는 안내문은 비문,오문 투성이기가 일쑤이다.제품설명서만을 믿고 따라하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가 누구나 한두번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자를 주로 상대하는 출판사에 근무하게 되면서 절감하는 것은 우리말을 제대로 정확하게 쓰기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결국 말맛을살려가며 우리 문장을 구사하려면 국어사전을 가까이하는 방법밖엔 없다.나자신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면 영어사전을 펼친 적은 숱하게 많지만 국어사전을 본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영어사전을 펼친다면 아는 것을 제대로 쓰기 위해 국어사전도 가까이 두어야 한다.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어사전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우리말이 하나 있다.발밤발밤.부질없이 발길이 닿는대로 한걸음 한걸음 걷는 모양이란 뜻이다.입안에 넣고 발음해 보면 우리시대에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이 단체로 내 혀 위에서 방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온다.

1998-03-3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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