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봄 샌프란시스코 독재 비판 감동적 연설 ‘한국의 사하로프’로 각인/1992년 대중연설 목도 가는 곳마다 군중 매료 ‘한국의 옐친’ 별명 추가/러 박사학위 취득 과정 해박한 지식에 외경심 ‘한국의 루소’로 불러야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것은 1973년 봄 샌프란시스코에서였다.당시 소련 대사관의 부영사였던 나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정치발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주로 띠고 활동했다.어느날 나는 지방신문에서 한국의 한 반체제인사가 대중연설을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김대중씨였다.
나는 업무상 연설을 듣기 위해 갔다.당시 47살의 김대중씨는 나이보다 정력적이었고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그는 가차없이 한국의 독재상황을 비판했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해 역설했다.나는 연설에 빠져 들어갔고 40분이 지났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연설은 끝나고 질의응답이 계속됐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매우 깊은 신념에 차 있었다.나는 당시부터 이 용기있는 한국인을 ‘한국의 사하로프 박사’로 부르기 시작했다.그 이후 나는 줄곧 김대중씨의 활동을 모니터했다.그의 연설전문이라든가 그가 기고한 기사들을 스크랩해 나갔다.
그러다 1973년 김대중씨가 한국의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됐다 풀려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도쿄납치사건’을 접하고 그에게 동정심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국영사관을 곧바로 찾아갔다.내가 당시 알고 지내던 백모 영사에게 거칠게 항의했다.그는 몹시 당황했고 “신문기사는 사실이 아니다.김대중씨는 납치당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70년대 후반까지 나는 “김대중씨는 한국의 보물이다.앞으로 한국의 미래가 그에게 달려 있다”고 설명하며 한국외교관들을 성가시게 했다.
1980년 11월3일.김대중씨는 당시 한국 군사정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나는 이미 모스크바로 귀임했을 때였다.모스크바에서 나는 지방의 한 신문에 김대중씨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한국의 군사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썼다.소련 정권은 당시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을 비난하는 어떤 글도 환영하고 있었다.
신의 덕분인지 그는 사면돼다시 미국땅을 밟았다.1985년 그는 한국으로 귀국했다.내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그를 다시 접하는 행운을 얻은 것은 1991년 김대중씨가 소련을 방문했을 때였다.그때까지 김대중씨는 과거의 정력적이고 열정적인 ‘한국의 사하로프’ 인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1992년 봄.김대중씨는 나와 나의 처를 한국으로 초청했고 이 초청이 그의 뛰어난 두번째 자질을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나는 대중집회장에 직접 나가 김대중씨가 수천명을 상대로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청중들은 그의 연설에 매료됐다.열광적으로 그를 ‘한국의 지도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와 나의 처는 김대중씨의 고향인 한반도 남부 하의도를 여행했다.하의도는 김대중씨가 태어나 공부했던 곳이다.그는 1950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투옥되기도 했다.나는 다시 김대중씨에 또 다른 별명을 붙이기 시작했다.‘한국의 옐친’이라고.그는 어디를 가도 다 군중들의 ‘관심’과 ‘충성감’을 쉽게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 돌아오기 전 우리는 다시 김대중씨를 서울에서 만났다.이 자리에서 그는 러시아 박사학위에 관심을 표시했다.나는 러시아의 ‘독토르(박사)’학위는 다른 서양의 ‘PHD’와 다르다는 것을 설명했고 러시아에서 독토르 학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권 이상의 단행본 저서가 있어야 함을 알려줬다.
이것이 내가 그의 세번째 훌륭한 자질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그는 내게 무려 17권이나 되는 저서를 겸손히 보여줬다.나는 놀랐다.그의 학문 영역은 놀라운 것이었다.철학·정치학·경제학·미학·신문방송학·문학 뿐만 아니라 동·서양사와 예술·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한국:민주주의의 여러사건과 희망들’이라는 새 저서로 러시아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한국인으로서는 1호였다.심사위원들은 하루종일 계속된 구술시험을 끝내고 ‘전원일치’로 박사학위를 수여키로 결정했다.심사위원들은 기립박수까지 보냈다.러시아 정부는 즉각 학위수여증을 수여했고 러시아 아카데미학자들은 그를 동료로 받아들였다.그날밤 나는 ‘한국의 장자크 루소’‘한국의 계몽주의자’라고 그의별명을 추가했다.<러 외교아카데미 부원장·본지 지구촌 칼럼 필자>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것은 1973년 봄 샌프란시스코에서였다.당시 소련 대사관의 부영사였던 나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정치발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주로 띠고 활동했다.어느날 나는 지방신문에서 한국의 한 반체제인사가 대중연설을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김대중씨였다.
나는 업무상 연설을 듣기 위해 갔다.당시 47살의 김대중씨는 나이보다 정력적이었고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그는 가차없이 한국의 독재상황을 비판했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해 역설했다.나는 연설에 빠져 들어갔고 40분이 지났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연설은 끝나고 질의응답이 계속됐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매우 깊은 신념에 차 있었다.나는 당시부터 이 용기있는 한국인을 ‘한국의 사하로프 박사’로 부르기 시작했다.그 이후 나는 줄곧 김대중씨의 활동을 모니터했다.그의 연설전문이라든가 그가 기고한 기사들을 스크랩해 나갔다.
그러다 1973년 김대중씨가 한국의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됐다 풀려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도쿄납치사건’을 접하고 그에게 동정심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국영사관을 곧바로 찾아갔다.내가 당시 알고 지내던 백모 영사에게 거칠게 항의했다.그는 몹시 당황했고 “신문기사는 사실이 아니다.김대중씨는 납치당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70년대 후반까지 나는 “김대중씨는 한국의 보물이다.앞으로 한국의 미래가 그에게 달려 있다”고 설명하며 한국외교관들을 성가시게 했다.
1980년 11월3일.김대중씨는 당시 한국 군사정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나는 이미 모스크바로 귀임했을 때였다.모스크바에서 나는 지방의 한 신문에 김대중씨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한국의 군사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썼다.소련 정권은 당시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을 비난하는 어떤 글도 환영하고 있었다.
신의 덕분인지 그는 사면돼다시 미국땅을 밟았다.1985년 그는 한국으로 귀국했다.내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그를 다시 접하는 행운을 얻은 것은 1991년 김대중씨가 소련을 방문했을 때였다.그때까지 김대중씨는 과거의 정력적이고 열정적인 ‘한국의 사하로프’ 인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1992년 봄.김대중씨는 나와 나의 처를 한국으로 초청했고 이 초청이 그의 뛰어난 두번째 자질을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나는 대중집회장에 직접 나가 김대중씨가 수천명을 상대로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청중들은 그의 연설에 매료됐다.열광적으로 그를 ‘한국의 지도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와 나의 처는 김대중씨의 고향인 한반도 남부 하의도를 여행했다.하의도는 김대중씨가 태어나 공부했던 곳이다.그는 1950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투옥되기도 했다.나는 다시 김대중씨에 또 다른 별명을 붙이기 시작했다.‘한국의 옐친’이라고.그는 어디를 가도 다 군중들의 ‘관심’과 ‘충성감’을 쉽게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 돌아오기 전 우리는 다시 김대중씨를 서울에서 만났다.이 자리에서 그는 러시아 박사학위에 관심을 표시했다.나는 러시아의 ‘독토르(박사)’학위는 다른 서양의 ‘PHD’와 다르다는 것을 설명했고 러시아에서 독토르 학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권 이상의 단행본 저서가 있어야 함을 알려줬다.
이것이 내가 그의 세번째 훌륭한 자질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그는 내게 무려 17권이나 되는 저서를 겸손히 보여줬다.나는 놀랐다.그의 학문 영역은 놀라운 것이었다.철학·정치학·경제학·미학·신문방송학·문학 뿐만 아니라 동·서양사와 예술·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한국:민주주의의 여러사건과 희망들’이라는 새 저서로 러시아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한국인으로서는 1호였다.심사위원들은 하루종일 계속된 구술시험을 끝내고 ‘전원일치’로 박사학위를 수여키로 결정했다.심사위원들은 기립박수까지 보냈다.러시아 정부는 즉각 학위수여증을 수여했고 러시아 아카데미학자들은 그를 동료로 받아들였다.그날밤 나는 ‘한국의 장자크 루소’‘한국의 계몽주의자’라고 그의별명을 추가했다.<러 외교아카데미 부원장·본지 지구촌 칼럼 필자>
1998-02-2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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