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짜리부터 찾자/강석진 도쿄 특파원(오늘의 눈)

1원짜리부터 찾자/강석진 도쿄 특파원(오늘의 눈)

강석진 기자 기자
입력 1998-01-07 00:00
수정 1998-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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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 일본인 지인들을 송년회 등에서 만났다.이야기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정치와 경제로 흘러 갔다.대부분 한국 전문가들인지라 최근 한국이 겪고 있는 난국에 대해서는 각자의 혜안을 펼쳐보인다.그 가운데 H씨의 말에는 특히 공감이 갔다.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70년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연구하기로 결심하고 한국에 유학했다.당시 일본에 비치는 한국은 독재,데모,가난 등의 이미지였다.하지만 유학했던 고려대에 가서 보니 한국을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학생들끼리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는데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었다.도시락을 싸와도 반찬은 김치 한 병 뿐인 경우가 많았다.라면봉지에 싸서 가져온 김치도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

물 한 모금을 마신 그는 이어나갔다.“그래도 학생들은 도시락을 나눠 먹으면서 나라가 나아갈 길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했고 행동하려 했다.한국인들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가난해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야루키 やる기)이 있었다.노는 방법도 잘 알았다.들놀이 갈 때 소주 한 병만 차고나가도 즐겁게 놀았다.한국인들은 행복하게 보였다.일본이 잃어버린 꿈이 생생하게 뛰노는 듯했다.한국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요즘 보는 한국은 다르다.“한국에 가면 1원 단위의 계산은 뚝 잘라버린다.일본인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계산의 편리를 위한다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1원에 웃으면 1원에 운다’고 한다.한국인들이 돈을 벌더니 계산을 ‘대충대충’한다는 인상을 준다.신용이 뚝 떨어진다.사람간의 일에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돔부리 간죠(どんぶりかんじょう:수중의 돈을 장부에 적지 않고 마음대로 쓰는 일)도 다반사다.한국이 다시 라면봉지에 싸간 맛없는 김치로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해 보자’는 기운에 충만했던 그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다시 도약할 수 있을 것 같다.1원짜리도 계산하고 소중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일본에서는 예를 들어 105엔짜리 물건을 사면서 1엔이 모자르면 물건을 팔지 않는 예가 많다.같이 밥 먹어도 밥값 계산은 따로따로다.한턱 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양에 넘치게 주문할 이유가 없고 따라서 음식쓰레기도 적게 난다.어려움 속에 맞이한 새해에는 우리도 1원짜리부터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끈을 조여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H씨와 헤어졌다.

1998-01-0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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