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매체 폐해 불감증/민용태 고려대 교수·스페인문학(시론)

영상매체 폐해 불감증/민용태 고려대 교수·스페인문학(시론)

민용태 기자 기자
입력 1997-10-07 00:00
수정 1997-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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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TV를 안보고 사는 사람은 없다.하루라도 차를 안타고 사는 현대인도 없다.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대인은 차도 타고 TV를 보면서 하루하루를 산다.소위 현대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그러나 차를 타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경우는 봤어도 TV를 보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감성없는 차가움에 익숙

문제는 ‘사고를 당했다는 소리’도 못들어 보았다는 사실이 영상매체중독증의 위험성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술을 상습적으로 마시는 사람을 우리는 알콜중독자라고 하며 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니코틴중독자라고 한다.그러나 날마다 TV를 보는 사람을 TV중독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물론 그 폐해가 잘 알려져 있지도 인식되어 있지도 않다.

TV나 비디오·컴퓨터 등 영상매체가 일반화되면서 우리들은 어린이들의 시력이 나빠진다고 걱정을 하거나 전자파가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데 대해 경고를 하기도 한다.그러나 이들 매체가 막상 우리의 현실 인식과 의식을 최면하고 있는 무서운 독성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마셜 맥루헌은 이미 이런 대중매체의 역기능을 통틀어 ‘차가운 매체’라고 규정한 바 있다.즉 사람의 피가 통하지 않는,몸과 몸으로 교감하지 않는 따스한 인간적 전달방법이 아닌 차가운 전달방법이라는 뜻이다.연극이나 음악회는 직접 배우나 가수가 육성으로 예술성을 전달하는 인간성이 풍부한 예술방법이다.그러나 이런 예술은 이제 ‘차가운 매체’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디스크나 TV 등 영상매체들이 더욱 ‘뜨거운 방법’으로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 오늘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로 느껴

루소는 전통적 연극에 대해서도 ‘당랑벨에게 보낸 편지’에서 반연극론을 펼친바 있다.“연극은 거짓말 이야기인데 그것을 너무 실감나게 각색하고 연기하는 통에 그런 가짜 상황에 홀랑 빠지게 만든다.그래서 울고웃다 보면 우리는 연극중독증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는 연극스러운 현실이 아니면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비인간적 사람을 만든다”고 경고하였다.말을 바꾸면 연극까지도 현실에 대한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연극적인,허구스러운 것만 현실로 착각토록 병들게 만든다는 것이다.루소는 이런 허구성 감정 교육의 예술보다 차라리 시골축제가 더욱 자연스런 예술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시골축제에서는 누구에게 즐거운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없으며 흥이 나면 춤추고 웃고 떠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감정의 표출이나 교감이 이루어 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루소의 기우를 넘어서서 오늘날 연극보다 그 허구성이 보다 강하고 실감나는 ‘차가운 매체’인 TV가 현대인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현대인들은 이런 허구를 날마다 보는 빈도수나 그 실감 정도가 루소가 경고한 위험성의 수백배나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즉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자칫하면 ‘차가운 매체’의 노예가 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칫하면 인성이 마비되어 ‘차가운’ 살인자도 될 수 있다는 현실앞에 서있다.

○비인륜적 범죄에 무방비

영상매체에 나타나는 인간과 상황은 그러나 땀냄새나는 우리 주변의 사람이나 현실과는 전혀 다르다.브라운관을 통해 보이는 그 사람의 그림자가 그 사람과 같을 수는 없다.‘차가운 매체’가 만들어 내는 스타들은 모두 만들어 낸 사람들이다.TV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이런 만들어 낸 현실이나 실감나는 허구에 중독되어 막상 더럽고 땀냄새나는 현실이 눈앞에 닥치면 이건 사람 살만한 현실이 아니라고 믿어 버린다.소파에 편히 누워 겪는 브라운관 속의 가상현실을 진짜 현실이라고 믿고 그 안의 사실이 진짜 사람이 사는 현실이라고 계속 착각하고 산다.그래서 실제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세상살이는 하찮고 귀찮고,불필요한 것으로 여긴다.

이런 현상은 특히 과보호로 자라난 우리 젊은 세대에 심할수 있다.실제로 땀 흘려 가꾸어본 경험이 없는 신세대는 쉽게 환상에 빠질수 있다.박나리양의 유괴살인사건은 우리 모두를 슬픔에 젖게 했다.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8세의 임신녀가 용의자라는 데는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한다.우리 사회가 영상매체에 중독되어 있는 한 ‘차가운 범죄’는 막을 수가 업다.‘따뜻한 인간성’이 넘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대책이 절실한 시점에 우리는 서있다.
1997-10-0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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