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노승이 노송뿌리에 풀석/마른 얼굴·광대뼈 탁발승 묘사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관아재 조영우(1686∼1759)은 인물화를 잘 그리기로 정평이 나 있다.숙종과 영조때에 활약한 선비화가다.겸재 정선.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후기의 선비화가 삼재로 꼽혔다.그의 인물화 솜씨는 뛰어나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을 그리는 일에 추천될 정도였다고 한다.그 스스로도 “산수는 정선이 한수 위이나,인물은 내가 낫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가 그린 인물화 가운데 ‘노승헐각’은 빼어난 작품이다.비단천에 먹물로 그린 이 그림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했다.늙은 스님이 땅위로 솟아 난 노송 뿌리에 털썩 주저앉았다.화제에는 아픈 다리를 쉰다는 뜻이 들어있다.노구를 이끌고 암자로 오르는 산길을 접어 들었던 스님은 마냥 지쳤다.동냥한 곡식이 서너줌 들었을지도 모를 걸망을 내동댕이 친 것을 보면 어지간히 지친 모양이다.앉기는 했어도 숨이 하도 가빠 헐떡거리고 있다.얼굴은 아주 깡말랐다.그래서 광대뼈가 불쑥 튀어 나왔다.이빨도 다 빠져 입이 합죽한 노승은 그야말로 기진맥진한 표정이다.오죽 지쳤으면 동냥 걸망을 벗어 던졌을까.탁발승으로 살아온 온갖 풍상을 얼굴에 가득한 주름으로 새겼다.걸망 하나를 달랑 걸머메고 구름따라 바람따라 떠 돈 늙은 운수납자다.간밤을 잔 절을 나와 또 다른 암자를 찾아 다니기를 몇 수십년을 하는 사이 어느덧 늙어버린 것이다.노승은 앉고 나서도 몸을 온통 지팡이에 내맡겼다.그래서 굽은 등이 더 굽었는데,목에 걸어놓은 굵은 알 염주조차 무거워 보인다.고개를 들어 먼 허공을 바라보는 눈매에도 기운이 없다.그래도 눈꼬리가 처진 노승의 눈에는 무슨 생각이 분명히 어렸다.그것은 우주만물이 한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제행무상의 마음일 것이다.큰 소나무 장송 앞에서 덧없이 흘러간 풍상의 세월을 곱씹고 있는 노승은 이제 초조할 것이 없다는 눈치다.
수염은 서너가닥,고행으로 살아온 노승의 삶 만큼이나 빈약했다.광대뼈에 가린 귀 역시 실하지 않다.대나무 살을 엮어서 만든 모자를 썼다.가진 것이라고는 몸에 걸친 회흑색 먹물옷과 염주,지팡이와 걸망이 있을 뿐이다.도를 닦는데 마음을 기울인 이판이란 말로 자신을 내세울만한 스님도 아니다.그렇다고 절의 살림을 맡았던 사판은 더욱 아니다.어디 한군데 집착하지도 않았거니와 무소유로 살아온 터라 지금 탈속의 경지에 들었다.〈황규호 기자〉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관아재 조영우(1686∼1759)은 인물화를 잘 그리기로 정평이 나 있다.숙종과 영조때에 활약한 선비화가다.겸재 정선.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후기의 선비화가 삼재로 꼽혔다.그의 인물화 솜씨는 뛰어나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을 그리는 일에 추천될 정도였다고 한다.그 스스로도 “산수는 정선이 한수 위이나,인물은 내가 낫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가 그린 인물화 가운데 ‘노승헐각’은 빼어난 작품이다.비단천에 먹물로 그린 이 그림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했다.늙은 스님이 땅위로 솟아 난 노송 뿌리에 털썩 주저앉았다.화제에는 아픈 다리를 쉰다는 뜻이 들어있다.노구를 이끌고 암자로 오르는 산길을 접어 들었던 스님은 마냥 지쳤다.동냥한 곡식이 서너줌 들었을지도 모를 걸망을 내동댕이 친 것을 보면 어지간히 지친 모양이다.앉기는 했어도 숨이 하도 가빠 헐떡거리고 있다.얼굴은 아주 깡말랐다.그래서 광대뼈가 불쑥 튀어 나왔다.이빨도 다 빠져 입이 합죽한 노승은 그야말로 기진맥진한 표정이다.오죽 지쳤으면 동냥 걸망을 벗어 던졌을까.탁발승으로 살아온 온갖 풍상을 얼굴에 가득한 주름으로 새겼다.걸망 하나를 달랑 걸머메고 구름따라 바람따라 떠 돈 늙은 운수납자다.간밤을 잔 절을 나와 또 다른 암자를 찾아 다니기를 몇 수십년을 하는 사이 어느덧 늙어버린 것이다.노승은 앉고 나서도 몸을 온통 지팡이에 내맡겼다.그래서 굽은 등이 더 굽었는데,목에 걸어놓은 굵은 알 염주조차 무거워 보인다.고개를 들어 먼 허공을 바라보는 눈매에도 기운이 없다.그래도 눈꼬리가 처진 노승의 눈에는 무슨 생각이 분명히 어렸다.그것은 우주만물이 한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제행무상의 마음일 것이다.큰 소나무 장송 앞에서 덧없이 흘러간 풍상의 세월을 곱씹고 있는 노승은 이제 초조할 것이 없다는 눈치다.
수염은 서너가닥,고행으로 살아온 노승의 삶 만큼이나 빈약했다.광대뼈에 가린 귀 역시 실하지 않다.대나무 살을 엮어서 만든 모자를 썼다.가진 것이라고는 몸에 걸친 회흑색 먹물옷과 염주,지팡이와 걸망이 있을 뿐이다.도를 닦는데 마음을 기울인 이판이란 말로 자신을 내세울만한 스님도 아니다.그렇다고 절의 살림을 맡았던 사판은 더욱 아니다.어디 한군데 집착하지도 않았거니와 무소유로 살아온 터라 지금 탈속의 경지에 들었다.〈황규호 기자〉
1997-07-2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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