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저·삼두정치·골목대장(송정숙 칼럼)

시저·삼두정치·골목대장(송정숙 칼럼)

송정숙 기자 기자
입력 1997-07-17 00:00
수정 1997-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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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유명한 고대로마의 「삼두정치」에서 줄리어스 시저가 처음 폼페이우스를 끌어들이기 위해 어떻게 그와 접촉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당시의 시저는 폼페이우스에 비하면 세에서 사뭇 떨어지는 편이었다.폼페이우스가 원로원의 인정을 필요로 할때 그의 편에 서준 일이 있는 시저에게 약간의 호의를 가진 정도가 다였다.오히려 폼페이우스가 원정나간 사이 그 아내 무치야와 시저가 특별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둘의 사이에는 정치적 비밀협약이 맺어진다.폼페이우스는 그의 옛부하들을 동원하여 그 표로 시저를 집정관에 당선시켜 주고 시저는 당선이후 폼페이우스가 조직한 오리엔트 재편성안의 승인을 실현시킨다는 협약이다.

그러나 이 둘만의 연합으로는 역학과계가 균형을 이루기 힘들었다.폼페이우스가 월등하게 강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역시 시저의 제안으로 크라수스를 참여시켜 삼자연합을 이룬다.이 크라수스를 끌어들이는 일도 용이한 일은 아니었다.왜냐하면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는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했기때문이다.폼페이우스는 크라수스를 한단계 아래로 여기며 깔보는 편이었다.그런 폼페이우스를 시저가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어떻든 삼자연합은 성립되었다.크라수스는 기사계급을 대표하고 있었다.기사계급은 당시의 경제계를 뜻한다.자신이 제패한 동방의 통치를 순조롭게 이끄는 일의 성공을 위해 폼페이우스에게는 경제계의 협력이 긴요했고 크라수스는 그 힘을 가지고 있었다.시저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설득력으로 열세 극복

이렇게 해서 기원전 60년 봄부터 여름에 걸쳐 역사상 유명한 ‘삼두정치’는 성립되고 그 덕으로 40살에 이른 줄리어스 시저는 압도적인 다수로 집정관에 당선되지만 이 일이 있은뒤 반년 가까이가 지나도록 원로원파는 「삼두정치」를 몰랐다고 한다.

시저가 창안한 이 「삼두정치」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마다 차이가 있다.다만 ‘삼두정치’가 3명의 실력자가 상호 사익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뭉친 동맹이었음에는 이견이 없다.그리고 역사가중에는 시저의 경우만을 차별해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사익을 도모하는 것으로 타익을 이끌어내고 그리고 그 타익이 마침내는 공익으로 승화하게 하는 노력을 시저는 추구했으며 그에게는 그걸 이뤄내는 탁월한 실행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익을 공익으로 승화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도 같은 주장을 가지고있다.시저에게는 집정관에 당선되는 「사익」도 필요했지만 그 이후에 부딪치게될 원로원파의 반대를 뚫고 나갈수 있는 집정관 임기중의 강력한 ‘여당’도 확보해야 했으므로 ‘삼두정치’를 만들어냈고 그것으로 그의 장대한 구상인 ‘시저의 개혁’을 실현시키는 ‘공익’의 목적도 실현했다는 것이다.

○정치는 어른들의 놀이

정치인에게는 정적이 있게 마련이다.정적조차 우군을 만들어 동맹관계에 끌어들여야 사익으로 출발하여 공익에 이르는 정치적 목적이 이뤄질수 있다.정치협상의 테이블 위에서는 모든 적과 동지들이 온갖 사익과 타익을 놓고 논의할수 있으며 그 성사로 나라와 민족의 앞날에 기여하는 ‘공익’이 성취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정치는 ‘어른들의 놀이’다.그러므로 병정놀이하는 골목대장수준의 정치지망생은 곤란하다.그것을 수틀린다고 아무소리나 아무데서나 ‘폭로’하고 일러바치고 “쟤가 그랬대요!”하며 투정을 부려서 판을 깨뜨리는 ‘아이들 놀이’로 만드는 일은 곤란하다.그런 짓은 천하를 다스려보겠다는 사람으로는 너무 치졸한 것이어서 보는 사람들을 서글프게 만든다.한마당에 그런 이웃을 ‘동지’로 두고 있는 일은 불행한 일이다.그러나 그런일은 어디서나 항용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시저만큼은 못되더라도

이탈리아의 보통 고교에서 쓰는 역사교과서에 이렇게 쓰여진 대목이 있다고 한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 5가지다.‘지성’‘설득력’‘신체상의 내구력’‘자기 제어의 능력’ 그리고 ‘지속하는 의지’.시저만이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시저만큼 못될지라도 낮은 차원의 것이나마 이런 자질을 지닌 후보가 ‘경선’의 터널을 뚫는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을 것이다.그런 생각으로 위로를 받고 싶다.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주 많이 있는 것 같다.<본사고문>
1997-07-1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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