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아침에(외언내언)

「6·25」 아침에(외언내언)

송정숙 기자 기자
입력 1997-06-25 00:00
수정 1997-06-25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47년 되었다.「6·25」라는 말만 들어도 한숨처럼 『아아,그날!』을 몰아쉬던 세대도 이제는 사회를 구성하는 주역의 자리에서 멀어졌다.학교 교사조차 주둔군이나 전쟁시설로 내주고 가건물에서 공부하며 나무판자를 기다랗게 댄 목로집 걸상같은 것에 걸터앉아 강의를 듣던 세대도 현장에서 거의 「용퇴」를 당했다.

전쟁의 비극적인 기억을 멀리 쫓아버리고 오늘의 번성을 이루기 위하여 애써온 그들의 노력으로 오늘의 세대들은 도통 그런 것을 실감할수 없게 되어버렸다.그때의 배고픔 같은 것을 말하면 『라면이라도 먹지 배를 왜 곯았어?』하는 세대들이 이제는 주역으로 전면에 나서고 있다.비극적 패배주의에서 일어나 「기죽지 말고」 자라주기를 바라며 악몽들은 옮겨주지 않은 부모들의 온정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남쪽이 그런 생각을 「효과적」으로 실현시키기에만 몰두해오는 동안에도 북쪽은 6·25를 「끝나지 않은 싸움」으로 붙들어두는 데만 집요하게 매달려오고 있다.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오로지 그것만을 무기로 지켜왔다.식량이 없어 무너지는 나라도 그 힘으로 지키려 하고있고 이념의 실패도 그것으로 봉합하려 하고 있고 정권의 연장도 그것만을 의지하고 있다.

그 결과 서방의 군사전문가도,세계적인 한반도 전문가도,국내의 안보팀도,남북문제의 권위자도 한결같이 북한의 전쟁도발 가능성을 예측한다.가족을 이끌고 서해바다를 떠내려온 모험적인 탈북주민은 물론 식량이 떨어져서 걸식을 하러 연변을 떠도는 북한 인민도 「전쟁」카드만을 품고 있는 그들의 속셈을 증언하고 있다.그들이 끝내주지 않으면 47년동안 우리가 아무리 멀리 쫓아버렸다고 믿어왔어도 여전히 살아있는 이 악령같은 전쟁은 우리의 문전을 아직도 배회중이다.

더욱 고약한 일은 그 무기만 들이대면 오금을 못 쓸듯이 주눅이 드는 남쪽의 심정적 허약함을 북측이 끊임없이 이용한다는 점이다.피하는 일만으로는 이런 고약한 버릇을 고치게 할수 없을 것 같다.잽싸게 고지를 선점하려는 속셈으로 휴전선 언저리로 선거운동 영역을 펼치고 있는 후보들은 희떱게 구호만 외치지만 현명한 대안은 없어 보인다.<송정숙 본사고문>

1997-06-25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