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치역정/정치격랑 43년 헤쳐온 인동초

DJ 정치역정/정치격랑 43년 헤쳐온 인동초

박정현 기자 기자
입력 1997-05-20 00:00
수정 1997-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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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대선 패배로 은퇴선언한뒤 번복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대권도전은 이번이 네번째다.지난 71년 첫 도전을 시발로 87년,92년 잇따라 대권을 겨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71년 그는 당시 YS(김영삼)·이철승씨와 경선끝에 막판 뒤집기로 제1야당이던 신민당의 후보로 나섰다.박정희대통령과 맞붙었으나 역부족이었다.이후 6년의 투옥과 10년에 걸친 망명과 연금생활로 그에게는 「인동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87년 사면·복권으로 평화민주당을 창당,출마했으나 노태우(민정당)·YS(통일민주당)후보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하지만 88년 총선에서는 「황색바람」으로 제1야당을 만들어 냈다.

지역감정의 피해자이자 지역감정의 수혜자,40대 기수론의 한사람에서 세대교체의 당사자가된 김총재의 정치역정은 야당 정치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세번째 도전에 나선 92년 대선에서는 3당합당으로 여당후보로 나선 김영삼 후보와 국민당의 정주영 후보와 3파전을 벌였으나 김영삼 후보에 고배를 들었다.김총재는 「양김대결」에서 패배하자 정계은퇴를 선언했지만 국민회의 창당(95년9월)으로 정계에 다시 돌아왔다.

김총재의 대권도전은 숙명적인 라이벌 YS와의 끊임없는 대결이었다.4수째인 올해는 YS가 아닌 다른 여야의 후보들과 맞붙는다는 점이 다르다.<박정현 기자>

□DJ 대통령선거 득표

·7대(71.4.27)­공화당 박정희 52.3%

신민당 김대중 45.3%

·13대(87.12.16)­민정당 노태우 36.3%

통일민주당 김영삼 28%

평민당 김대중 27.1%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8.1%

·14대(92.12.19)­민자당 김영삼 42%

민주당 김대중 33.8%

국민당 정주영 16.5%

□김 총재 약력

▲25년 전남 신안 출생

▲44년 목포상고 졸업

▲48년 목포일보 사장

▲51년 흥국해운 사장

▲60년 민주당 대변인

▲61년 5대 민의원 보궐선거 당선(강원도 인제)

▲62년 이희호 여사와 결혼

▲63년 6대 국회의원(목포)

▲70년 신민당 7대 대통령후보 선출

▲87년 13대 대통령후보

▲92년12월 14대 대선후보,정계은퇴선언

▲94년1월 아태평화재단 설립

▲95년9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97년5월 대통령후보 선출
1997-05-2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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