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소장 청자연적 동녀상(한국인의 얼굴:90)

일 소장 청자연적 동녀상(한국인의 얼굴:90)

황규호 기자 기자
입력 1997-01-04 00:00
수정 1997-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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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 품에 안은 앙징스런 소녀/은행알 닮은 눈매에 천진함이…

청자는 흙과 물과 불이 고려 사람들의 혼과 어울려 태어났다.그 뿌리를 비록 중국에 두었다 하더라도 고려청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탄생한 절세의 도자공예인 것이다.1123년 북송사신으로 왔던 서긍은 고려청자를 보고 「천하 제일의 비색」이라 감탄하지 않았던가.오늘을 산 시인 김상옥은 「흙으로 빚었으나,천년 전 봄의 감촉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내용의 시어로 고려청자를 예찬했다.

고려청자의 시원은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그러나 청자가 본격 등장한 시기는 고려가 개국한 10세기 후반을 넘어 11세기에 해당할 것이다.고려사람들은 중국 것을 모방하지 않고 지극히 고려적인 청자를 빚고 구었다.그리하여 12세기에 들어 독창적 생김새와 독특한 비색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 고려청자 전성기를 열었다.무늬 또한 고려 귀족사회의 아취를 반영하 듯 정갈하면서도 화려했다.

그 12세기 명품중에서 인물상 청자를 간혹 만날 수 있다.일본으로 흘러들어간 청자조각동녀형연적은 아주 이름 높은 명품으로 꼽혔다.지금은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대판동양도자미술관)이 소장했다.먹갈이에 쓸 물을 담았던 그릇이 연적이다.이 청자연적은 어린 소녀상을 형상화했다.오른 무릎은 세우고 왼 무릎을 눕힌 자세로 앉은 소녀가 정병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소녀는 애티를 다 벗지 못한 어린아이다.키라야 모자 꼭대기까지 재어도 11.1㎝밖에 안되었다.그래서 앉은 품이 앙징스럽다.아직은 욕심을 부릴 나이도 아니어서 얼굴은 그저 해맑았다.아무 생각없는 무념한 마음인데,눈은 먼 곳을 바라보았다.그리 크지는 않으나 은행알 모양을 한 눈매에도 때 묻지않은 동심이 어렸다.동글납작한 코와 주전부리를 마다하지 않고 오물거릴 입도 귀여웠다.

머리통은 잘 생긴 복숭아를 닮았다.머리를 틀어 매놓고 곱게 빗어내려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그리고 연잎에 연꽃봉우리가 돋아난 모자를 머리에 올려놓았다.소녀가 입은 옷에는 오목새김한 갖가지 무늬가 들어있다.바지에는 작은 동그라미 무늬,저고리 도련에는 당초문을 새겼다.또 저고리와 정병에는 똑같은 꽃잎무늬인화판문을 새겨 멋을 냈다.

이 동녀형연적이 풍기는 느낌은 물론 키와 문양이 비슷한 청자조각동자형연적도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이 소장했다.두 연적의 소녀상과 소년상은 눈동자에 자토를 찍었다.눈동자를 검게 표현하기 위해서다.그리고 소년의 동여맨 머리에도 약간의 자토를 발라 검은머리가 되었다.본래 한쌍을 이루었던 문방구로 보고 있다.

이들 청자연적이 어떤 길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는지는 잘 모른다.다만 아다카컬렉션(안택수 집품) 한국도자기 793점 가운데 끼어있는 유물의 일부로 알려졌을 뿐이다.한국도자기 주축의 아다카컬렉션은 1982년 문을 연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설립 촉진제 구실을 했다.<황규호 기자>
1997-01-0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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