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마음 떠보려 거짓죽음 했더니(박갑천 칼럼)

자녀마음 떠보려 거짓죽음 했더니(박갑천 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6-11-21 00:00
수정 199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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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별난 장난질도 있다.남아프리카공화국 지와이드라는 곳에 사는 조지 소그웨라는 노인의 장난도 좀 엄발났다.친척이나 친지들이 어쩌나 보려고 거짓으로 죽은척 관속에 들어가 밖에서 주고받는 얘기들을 들었다는 것 아닌가.장례식이 끝날 무렵 관속에서 불끈 일어섰다니 얼마나들 놀랐을까.

이 얘기는 우리 전통사회의 가짜 장례식을 떠올리게 한다.사대부 집안에서는 개가를 못했다.그랬으니 청상 딸(혹은 며느리)을 보는 어버이마음은 오죽했겠는가.밤중에 몰래 집안 종과 짝지어 돈꾸러미 안겨주면서 멀리 떠나 살도록 얼러방친다.그래놓고 병들어 죽은양 울며 불며 장사지낸다.시쳇말로 해본다면 『가문이 뭣이길래』.

시건방떨며 젠체하는 한 제독관을 관(궤)속에 담아 골탕먹인 얘기가 「천예록」에 적혀 있다.그 일엔 경주골 기생이 모두 나섰고 평소 괘씸하게 여겨온 부윤까지 가세한다.제독은 향교의 재실에서 홀로 거처했는데 시골아낙으로 변장한 기생이 접근하여 꼬드겨낸다.드디어 기녀집으로 가게 된다.둘이서 발가벗고 막 이부자리 속으로들어가려 하는데 경주 제일의 망나니라는 기둥서방이 들이닥친다.옴나위없이 당할 판이다.

제독관은 체면이고 뭐고 알몸인 채로 빈 관(궤)속에 들어간다.그 관속에서 제독관은 남녀가 이해관계로 다투는 소리를 다 듣는다.나중에는 궤(관)의 소유권문제에까지 이른다.날이 밝으면 부윤한테 가서 판결을 받자고 한다.이튿날 부윤의 판결은 솔로몬의 지혜였다.『두사람이 절반씩 돈을 내어 샀다고? 그러면 그걸 두 도막으로 잘라 하나씩 갖도록 하라』.소그웨노인 아닌 제독관으로서는 얄망궂게 된 형편.흥부박일 수는 없다.톱으로 자르기 시작하자 살려달라며 뛰쳐나왔으니 알몸뚱이 양반체면이라니.

「장자」(지낙편)에는 초나라 가던 길의 장자가 촉루(해골)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해골이 장자에게 뒤넘스럽다 싶게 인생을 강론하지 않던가.해골이 그러니 숨 거둔지 얼마 되잖은 주검들이야 친지·자녀들이 궁뚱망뚱 치르는 장례의식을 샅샅이 보는 건지도 모른다.특히 재산문제로 무람없이 아옹다옹거리는걸 보면서는 소그웨노인같이 관을 뚫고 나올 마음 굴뚝같으리라.

말은 없지만 돌아간 영혼들은 관속 아닌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들 언행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려니….〈칼럼니스트〉
1996-11-2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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