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쿠르드 침공땐 보복” 유엔통해 경고/9.1영 등 우방과 협의후 2일 공습 결정/9.2∼3일부계획 수정후 승인… 미사일 공격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주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쿠르드족 파벌간의 분쟁에 직접 개입할지도 모른다는 정보보고로 이라크의 쿠르드족 침공 징후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
미국의 8월29일 정보보고는 이라크의 정예 공화국수비대의 장갑부대들을 포함한 「분명히 증강된」 이라크군이 쿠르드족의 아르빌시를 공격권에 넣는 거리에 진출해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라크의 아르빌 공격이 확실시 된다고 결론.미국은 이라크가 쿠르드족 생존권을 침범하는 경우 보복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 내용이 담긴 외교 메시지를 뉴욕 주재 이라크 유엔 대표부와 워싱턴 주재 알제리 대사관의 이라크 이익대표부를 통해 전달.
8월29일(이하 미국시간):국가안보 보좌관들이 워싱턴에서 회동,후세인의 아르빌 공격에 대한 군사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며 미군에 고도의 경계령이 내려짐.
8월30일:클린턴 대통령은 버스를 타고 시카고에서 캔터키로 유세여행을 하면서 사태 전개를 주시.이라크에 두번째의 경고 메시지.
존 섈리캐슈빌리 합참의장과 로버트 펠리트로 중동문제담당 국무차관보가 이집트·사우디 아라비아·요르단 지도자들과의 협의를 위해 현지로 급파.
9월1일:클린턴 대통령은 존 메이저 영국총리,파드 사우디국왕,후세인 요르단국왕,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라크의 침공문제를 협의.클린턴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들 및 국방부와 협의한 후 당초 1일(미국시간)상오로 잡혀졌던 이라크 폭격 비행이 2일 상오로 24시간 연기.
9월2일:클린턴 대통령은 이라크 공격작전계획에 일부 수정을 가한 뒤 이를 최종 승인.
9월3일:이라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 단행.<유상덕 기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주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쿠르드족 파벌간의 분쟁에 직접 개입할지도 모른다는 정보보고로 이라크의 쿠르드족 침공 징후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
미국의 8월29일 정보보고는 이라크의 정예 공화국수비대의 장갑부대들을 포함한 「분명히 증강된」 이라크군이 쿠르드족의 아르빌시를 공격권에 넣는 거리에 진출해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라크의 아르빌 공격이 확실시 된다고 결론.미국은 이라크가 쿠르드족 생존권을 침범하는 경우 보복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 내용이 담긴 외교 메시지를 뉴욕 주재 이라크 유엔 대표부와 워싱턴 주재 알제리 대사관의 이라크 이익대표부를 통해 전달.
8월29일(이하 미국시간):국가안보 보좌관들이 워싱턴에서 회동,후세인의 아르빌 공격에 대한 군사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며 미군에 고도의 경계령이 내려짐.
8월30일:클린턴 대통령은 버스를 타고 시카고에서 캔터키로 유세여행을 하면서 사태 전개를 주시.이라크에 두번째의 경고 메시지.
존 섈리캐슈빌리 합참의장과 로버트 펠리트로 중동문제담당 국무차관보가 이집트·사우디 아라비아·요르단 지도자들과의 협의를 위해 현지로 급파.
9월1일:클린턴 대통령은 존 메이저 영국총리,파드 사우디국왕,후세인 요르단국왕,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라크의 침공문제를 협의.클린턴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들 및 국방부와 협의한 후 당초 1일(미국시간)상오로 잡혀졌던 이라크 폭격 비행이 2일 상오로 24시간 연기.
9월2일:클린턴 대통령은 이라크 공격작전계획에 일부 수정을 가한 뒤 이를 최종 승인.
9월3일:이라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 단행.<유상덕 기자>
1996-09-0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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