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서구 문물로 꽉 채워진 일상생활을 살면서 새삼 한국의 고유 문화를 생각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오히려 국제화·세계화를 지향하는 이마당에 한국 고유 문화를 거론하는 것은 너무 국수주의적인 자세가 아닌가 반문당하기 쉽다.우리 문화를 너무 고집하지 말고 넓은 아량으로 세계 각국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세계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이다.그러나 기실 국제화가 진전될수록 각 나라와 민족에게 더욱 소중해지는 것이 바로 자신의 고유문화이다.스스로의 문화가 없이는 세계 공동체를 위해서도 기여하는 바가 없게 되고,다른 한편 자기 고유문화의 바탕위에서 만들어진 창의적인 제품이 없이는 세계 산업경쟁 대열에 서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구한말 격변기와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 단절되었던 한국의 고유 문화는 해방후 민족갈등기와 산업개발기를 지내면서 아직도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그 결과,이제는 무엇이 한국 문화인지 알기 어렵고,이를 배태한 정신문화가 무엇인지는 더욱 알 수 없게된 시점에 이르렀다.이따금 사극속에 나타난 선조들의 생활양식을 보며 이를 가늠해 볼 따름이다.그러나 현실과의 괴리가 깊어 공감하기가 어렵거니와,더욱이 오늘의 생활 속에 되살리기는 불가능한 일이 되고 있다.사극 속의 생활양식은 그 시대의 정신문화가 구체화한 것으로서 그 정신문화를 이해하지 않는한 이를 공감하거나 재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속 격랑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아직 우리 고유문화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다.바로 불교 사찰들이다.불교 사찰들은 지난 1천6백년의 역사속에 우리 고유문화를 가장 잘 보존,계승해 왔다.절집 그 자체가 기와집 한옥 양식이요,식생활·의생활에 있어서도 전혀 서구양식의 침투없이 과거의 우리 고유양식을 보존하고 있다.몇해전 송광사 대웅보전의 중창불사시에도 당시의 무형문화재 목수,기와공들을 모셔다가 순수한 재래식 한옥 양식을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이와같은 외형적인 문화양식도 물론 중요하지만,불교 사찰이 계승하고 있는 더욱 소중한 부분은 한국 정신문화이다.그곳에는 속세의 모든 인연을 끊고 출가한스님들이 모여 치열한 수도정진을 하면서 쌓아올린 높은 경지의 정신문화가 있다.그속에 신라 원효스님,고려 보조국사를 비롯한 이나라 정신적 스승들의 가르침이 이어진다.천년 역사의 거친 세파속에서도 불교가 항상 새롭게 피어나온 것은 이와같은 불타는 구도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이것은 결코 불교만의 것일 수 없으며,꺼뜨릴 수 없는 한국 정신문화의 소중한 불씨일 것이다.
철저한 고행과 구도 수행을 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진리가 있다.애욕을 끊고 무소유의 삶을 사는 사람들만이 전해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이 세상에 이러한 사람들이 있어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 넉넉해지고 희망에 차게 된다.이것은 대량 소비,물질만능의 혼탁한 현세 삶을 정화시켜 줄 청정한 샘물이요,정신적 물질적으로 짓눌려 살아온 우리 민족의 장래를 밝혀줄 희망의 등불이다.
최근 들어 합천 해인사 인근에 골프장을 건설하는 문제를 두고 파문이 일고 있다.해인사에서 산등성이를 하나 넘는 위치에 골프장을 건설하겠다는 업자측의 주장과 이를 반대하는주민,불교계,각종 문화·환경·시민단체의 주장이 엇갈려 오다가 법정 투쟁으로 비화되기에 이른 것이다.서울 고등법원은 이미 골프장 개발업자측의 승소 판결을 내린바 있고,이제 대법원의 최종 판결만 앞두고 있는 상태라 한다.
단순한 법의 논리에 입각하면 법원이 업자측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은 공정한 일이었을는지 모른다.그러나,천년을 잇는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이렇듯 짧은 시대를 풍미하는 법의 잣대로만 잴 수는 없다.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 문화유산인 점도 그러하거니와 더욱 중요한 것은 해인사가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소중한 보루이기 때문이다.이 정신문화의 보루는 속세와 격리되어 자연환경속에 묻혀 있을 때에만 그 맥통이 이어진다.개발은 불가역의 일방 통행과정이다.골프장 건설을 통해 일단 개발의 도화선이 점화되면 번져가는 개발열기속에 이 보루는 멀지않아 와해되고 말 것이다.골프장 건설 하나 때문에 천년을 지켜온 정신문화의 불꽃을 꺼뜨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서울대교수·전자공학/1996.8.9>
구한말 격변기와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 단절되었던 한국의 고유 문화는 해방후 민족갈등기와 산업개발기를 지내면서 아직도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그 결과,이제는 무엇이 한국 문화인지 알기 어렵고,이를 배태한 정신문화가 무엇인지는 더욱 알 수 없게된 시점에 이르렀다.이따금 사극속에 나타난 선조들의 생활양식을 보며 이를 가늠해 볼 따름이다.그러나 현실과의 괴리가 깊어 공감하기가 어렵거니와,더욱이 오늘의 생활 속에 되살리기는 불가능한 일이 되고 있다.사극 속의 생활양식은 그 시대의 정신문화가 구체화한 것으로서 그 정신문화를 이해하지 않는한 이를 공감하거나 재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속 격랑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아직 우리 고유문화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다.바로 불교 사찰들이다.불교 사찰들은 지난 1천6백년의 역사속에 우리 고유문화를 가장 잘 보존,계승해 왔다.절집 그 자체가 기와집 한옥 양식이요,식생활·의생활에 있어서도 전혀 서구양식의 침투없이 과거의 우리 고유양식을 보존하고 있다.몇해전 송광사 대웅보전의 중창불사시에도 당시의 무형문화재 목수,기와공들을 모셔다가 순수한 재래식 한옥 양식을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이와같은 외형적인 문화양식도 물론 중요하지만,불교 사찰이 계승하고 있는 더욱 소중한 부분은 한국 정신문화이다.그곳에는 속세의 모든 인연을 끊고 출가한스님들이 모여 치열한 수도정진을 하면서 쌓아올린 높은 경지의 정신문화가 있다.그속에 신라 원효스님,고려 보조국사를 비롯한 이나라 정신적 스승들의 가르침이 이어진다.천년 역사의 거친 세파속에서도 불교가 항상 새롭게 피어나온 것은 이와같은 불타는 구도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이것은 결코 불교만의 것일 수 없으며,꺼뜨릴 수 없는 한국 정신문화의 소중한 불씨일 것이다.
철저한 고행과 구도 수행을 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진리가 있다.애욕을 끊고 무소유의 삶을 사는 사람들만이 전해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이 세상에 이러한 사람들이 있어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 넉넉해지고 희망에 차게 된다.이것은 대량 소비,물질만능의 혼탁한 현세 삶을 정화시켜 줄 청정한 샘물이요,정신적 물질적으로 짓눌려 살아온 우리 민족의 장래를 밝혀줄 희망의 등불이다.
최근 들어 합천 해인사 인근에 골프장을 건설하는 문제를 두고 파문이 일고 있다.해인사에서 산등성이를 하나 넘는 위치에 골프장을 건설하겠다는 업자측의 주장과 이를 반대하는주민,불교계,각종 문화·환경·시민단체의 주장이 엇갈려 오다가 법정 투쟁으로 비화되기에 이른 것이다.서울 고등법원은 이미 골프장 개발업자측의 승소 판결을 내린바 있고,이제 대법원의 최종 판결만 앞두고 있는 상태라 한다.
단순한 법의 논리에 입각하면 법원이 업자측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은 공정한 일이었을는지 모른다.그러나,천년을 잇는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이렇듯 짧은 시대를 풍미하는 법의 잣대로만 잴 수는 없다.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 문화유산인 점도 그러하거니와 더욱 중요한 것은 해인사가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소중한 보루이기 때문이다.이 정신문화의 보루는 속세와 격리되어 자연환경속에 묻혀 있을 때에만 그 맥통이 이어진다.개발은 불가역의 일방 통행과정이다.골프장 건설을 통해 일단 개발의 도화선이 점화되면 번져가는 개발열기속에 이 보루는 멀지않아 와해되고 말 것이다.골프장 건설 하나 때문에 천년을 지켜온 정신문화의 불꽃을 꺼뜨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서울대교수·전자공학/1996.8.9>
1996-08-1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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