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유도 금 전기영/무릎부상 딛고 값진 승리/6개월새 두차례… 대표단에 겨우 합류/마취제 거부한채 자신과의 싸움 벌여
전기영의 금메달은 대표 선발전 참가조차 어려웠던 무릎부상을 딛고 거둬낸 값진 수확이었다.대표팀 김창호 감독은 『전기영의 금메달은 인간승리의 표본』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는 지난 2월 독일오픈에 나갔다가 1회전에서 탈락했다.오른쪽 무릎 부상 때문이었다.그 상대는 바로 22일 올림픽 2차전에서 힘겹게 판정승을 거두었던 네덜란드의 위징가였다.93년 가노컵에서 무명의 일본 선수에게 패한 뒤로 외국선수에게 당한 첫 패배여서 그 충격은 의외로 컸다.
무릎을 다친 전기영은 귀국해 곧바로 시작한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 나설 형편이 못되었다.김감독은 전기영이 확실한 금메달 후보인 만큼 선발전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올림픽 티켓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형평의 원칙 앞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억지로 나선 국내 선발전에서 그는 5위에 그쳤다.부상 여파라고는 하지만 올림픽 전까지 부상이 완쾌되겠느냐는 의문이 꼬리를 이었고 일부서는 『이제 전기영 시대는 갔다』는 수군거림도 들렸다.
애틀랜타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보조운동에 전념하던 전기영은 부상이 회복될 즈음 다시 시작된 최종 선발전에서 부상을 딛고 우승,당당히 대표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또다시 악운이 찾아왔다.애틀랜타로 떠나기 불과 15일 전이번에는 왼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그는 이때부터 고무줄 당기기 등 보조운동에만 매달렸다.업어치기 훈련이 부실한만큼 허리기술을 다듬는데 중점을 둘 따름이었다.무엇보다 애틀랜타 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확실한 금메달 감으로 추켜주는 언론의 집중 세례는 심적 부담을 더욱 안겨 주었다.팀닥터 이종하씨는 22일까지도 도핑과 무관한 호르몬제를 사용하든지 순간마취제를 맞고 매트에 나서는 게 어떠냐고 제의할 정도로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기영은 끝내 이를 거절했다.통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긴장이 더 클 수 밖에 없었지만 약에 의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이를 눈치챈 안병근 코치가 경기 직전 몸싸움으로 부담을 덜어주려 애썼다.이런 어려움을 견디고 전기영은 기어코 꿈에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듣는 동안 지난 6개월 동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며 전기영은 굳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여자유도 금 조민선/4년전 좌절 끝내 이겨내/바르셀로나 대표 탈락… 한때 은퇴 생각/전 유도대표 이충석과 내년 결혼 계획
독하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시상대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질때 흐르는 눈물을 감출수는 없었다.
세계선수권 2연패와 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낸 「학다리」 조민선(24·쌍용양회).
90년 초반부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고도 바르셀로나올림픽때 대표 탈락으로 차라리 운동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그녀였기에,또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에 그쳤던 수모를 이제야 겨우 갚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기쁨의 눈물로 배어 나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녀는 지나간 고통을 털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아직 우리나라 어느 누구도 해 내지 못한 세계선수권 3연패의 금자탑과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꾸밀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조민선과 친분이 두터운 유도계의 한 관계자는 『조민선이 내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97세계선수권대회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해 웨딩마치를 울리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혔다.
아직 모든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 피앙세는 같은 유도선수로 전 국가대표 이충석(23·마사회).
조민선은 이에 대해 굳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주변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다.조민선과 이충석은 92년 태릉선수촌에서 대표 마크를 달고 서로 만나 남몰래 사랑을 키워 왔다는 것.
당시 선수촌에서 함께 지내며 자연스럽게 만난 이들은 솔직담백한 서로의 성격에 마음이 이끌려 우정을 나눠왔으며 지난해 2월 대학졸업후 양가의 허락아래 결혼을 전제로 본격적인 교제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민선은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해 결혼을 하기로 했으나 『기량에서 1∼2년은 더 현역으로 뛸 수 있다』는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여 세계선수권 3연패 위업을 쌓고 난뒤로 결혼 시기를 미루었다.
새 인생의 출발점에 선 조민선올림픽 금메달처럼 인생에서도 금메달을 기대해 본다.〈올림픽특별취재단〉
전기영의 금메달은 대표 선발전 참가조차 어려웠던 무릎부상을 딛고 거둬낸 값진 수확이었다.대표팀 김창호 감독은 『전기영의 금메달은 인간승리의 표본』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는 지난 2월 독일오픈에 나갔다가 1회전에서 탈락했다.오른쪽 무릎 부상 때문이었다.그 상대는 바로 22일 올림픽 2차전에서 힘겹게 판정승을 거두었던 네덜란드의 위징가였다.93년 가노컵에서 무명의 일본 선수에게 패한 뒤로 외국선수에게 당한 첫 패배여서 그 충격은 의외로 컸다.
무릎을 다친 전기영은 귀국해 곧바로 시작한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 나설 형편이 못되었다.김감독은 전기영이 확실한 금메달 후보인 만큼 선발전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올림픽 티켓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형평의 원칙 앞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억지로 나선 국내 선발전에서 그는 5위에 그쳤다.부상 여파라고는 하지만 올림픽 전까지 부상이 완쾌되겠느냐는 의문이 꼬리를 이었고 일부서는 『이제 전기영 시대는 갔다』는 수군거림도 들렸다.
애틀랜타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보조운동에 전념하던 전기영은 부상이 회복될 즈음 다시 시작된 최종 선발전에서 부상을 딛고 우승,당당히 대표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또다시 악운이 찾아왔다.애틀랜타로 떠나기 불과 15일 전이번에는 왼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그는 이때부터 고무줄 당기기 등 보조운동에만 매달렸다.업어치기 훈련이 부실한만큼 허리기술을 다듬는데 중점을 둘 따름이었다.무엇보다 애틀랜타 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확실한 금메달 감으로 추켜주는 언론의 집중 세례는 심적 부담을 더욱 안겨 주었다.팀닥터 이종하씨는 22일까지도 도핑과 무관한 호르몬제를 사용하든지 순간마취제를 맞고 매트에 나서는 게 어떠냐고 제의할 정도로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기영은 끝내 이를 거절했다.통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긴장이 더 클 수 밖에 없었지만 약에 의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이를 눈치챈 안병근 코치가 경기 직전 몸싸움으로 부담을 덜어주려 애썼다.이런 어려움을 견디고 전기영은 기어코 꿈에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듣는 동안 지난 6개월 동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며 전기영은 굳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여자유도 금 조민선/4년전 좌절 끝내 이겨내/바르셀로나 대표 탈락… 한때 은퇴 생각/전 유도대표 이충석과 내년 결혼 계획
독하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시상대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질때 흐르는 눈물을 감출수는 없었다.
세계선수권 2연패와 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낸 「학다리」 조민선(24·쌍용양회).
90년 초반부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고도 바르셀로나올림픽때 대표 탈락으로 차라리 운동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그녀였기에,또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에 그쳤던 수모를 이제야 겨우 갚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기쁨의 눈물로 배어 나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녀는 지나간 고통을 털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아직 우리나라 어느 누구도 해 내지 못한 세계선수권 3연패의 금자탑과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꾸밀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조민선과 친분이 두터운 유도계의 한 관계자는 『조민선이 내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97세계선수권대회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해 웨딩마치를 울리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혔다.
아직 모든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 피앙세는 같은 유도선수로 전 국가대표 이충석(23·마사회).
조민선은 이에 대해 굳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주변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다.조민선과 이충석은 92년 태릉선수촌에서 대표 마크를 달고 서로 만나 남몰래 사랑을 키워 왔다는 것.
당시 선수촌에서 함께 지내며 자연스럽게 만난 이들은 솔직담백한 서로의 성격에 마음이 이끌려 우정을 나눠왔으며 지난해 2월 대학졸업후 양가의 허락아래 결혼을 전제로 본격적인 교제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민선은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해 결혼을 하기로 했으나 『기량에서 1∼2년은 더 현역으로 뛸 수 있다』는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여 세계선수권 3연패 위업을 쌓고 난뒤로 결혼 시기를 미루었다.
새 인생의 출발점에 선 조민선올림픽 금메달처럼 인생에서도 금메달을 기대해 본다.〈올림픽특별취재단〉
1996-07-2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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