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하도록 하여라」(송정숙 칼럼)

「화장하도록 하여라」(송정숙 칼럼)

송정숙 기자 기자
입력 1996-06-20 00:00
수정 1996-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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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화장하도록 하여라』

기회있을때 이말을 꼭 해두고싶다.당장 중병도 아니고 아직 그럴 것까지는 없는 나이이지만 미리 해두고싶다.이 싱싱한 6월에 사위스럽고 써늘하게시리 웬 「화장타령」이냐고 핀잔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래도 이런 기회에 말해두고 싶다.

최근에 아버지의 초상을 치렀다는 20대 젊은이를 만났다.그는 생전의 아버지에게서 『화장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들었었기때문에 돌아가신 뒤에 집안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뜻을 살려 『화장해드리자』는 의견을 냈다가 「천하의 불효」취급을 당했다.결국 공원묘지 한귀퉁이에 구차하게 묻어드렸지만 두고두고 생각해도 생전의 아버지뜻은 「화장」이었음을 지울 수가 없고,그때문에 집안에서 「불효」취급을 받은 일이 억울하다고 했다.

그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유언이 실현되기 어려운 중요한 이유를 절실히 깨달았다.그러므로 가능하면 총기가 성할때 본인이 확실히 천명해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는 것이 무엇보다 상주가 될 자식들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유언이 실현되게 하는 길인 것이다.

최근 어떤 정치지도자의 「가족묘소」가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가족들」묘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 따랐지만 사진에 비친 그 가족묘는 둘레가 꽤 호화로워보였다.이것을 보도한 언론의 태도는 그런 일(묘소를 새로 정하여 가꾸는 행위)이 자손된 사람의 미덕처럼 느껴지게 했다.

요새는 산역을 옛날처럼 사람품으로 하지않고 포크레인으로 하기때문에 높은산에 산소마련하는 일을 기피하고 찻길에서 가까운 논밭에다 마련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그래서 경작지까지 묘지로 잠식당하는 일이 더욱 극성스러워졌다고 한다.생각있는 사람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전국토가 묘지로 씌일 것같다고 걱정이다.그런데도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조상의 묘를 치장하는 일은 미덕으로 묘사되는 이중적 구조를 우리는 지니고 있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요즈음 사람들은 부쩍 주술에 경도되는 경향을 보인다.예언이 적중했대서 화제를 모은 무속인이 화려하게 언론에 부상하고 급기야는 비싼 모델료로 광고에도 발탁되고,「명당자리」잘짚는 지관은 「부르는 게 값」으로 모셔지는 세상이다.그래선지 예의 「가족묘」주인에 대한 뜬소문도 나돈다.

사실은 그 묘소를 잡아준 사람이 그방면에 용한 「모씨」인데 그자리에 조상산소를 쓰면 평생소원이 성취될 것이라고 해서 가족묘를 새로 조성한 것이라는 둥,그래도 묘지를 호화롭게 꾸미지는 말랬는데 말을 안들었으므로 효험을 책임질 수 없다고 말했다는 둥….필시 소문꾼들의 소행이 분명한 근거없는 풍문이 나도는 것이다.

묘제에 관한 제도는 이리저리 견제를 당하여 손도 못대고 있는 형편이어서 국토의 묘지잠식은 방치상태에 있다.최근에 나온 사회지도층의 「화장 수범」공론은 이런 일련의 일에 대한 궁여지책인 셈이다.그러니 그 공론이라도 솔선해서 따라야 할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화장은 당연하게 장기기증을 전제로 한다.내가 보던 눈이 남의 안구에 들어가 계속 볼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죽음이후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질만한 설이 아무것도 없다.다만,죽는 순간영혼이 육신을 떠나 허공에 떠서 산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게 된다는 「설」이 어쩐지 마음에 든다.그것이 맞는다면 육신이 묘지에 담기는 것이나 불꽃에 산화하여 가루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차라리 한줌 가루가 되어 반짝이는 햇빛을 받으며 허공에 날리는 것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같다.아니면 오지 항아리에 담겨 먼저 떠난 가족들과 함께 납골당에 놓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다가 기일이나 성묘철에 가족의 방문을 받는다면 그또한 반갑고 대견할 것이다.새로 맞은 며느리가 새로 태어난 손주를 안고 단란한 모습의 가족이 되어 찾아준다면 나비처럼 가벼운 내영혼은 나풀나풀 그들의 어깨위를 날아다니며 『네가 바로 너로구나!』하고 반가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평소에 이런 마음을 미리 밝혀두면 자식들은 부모를 화장하는 일에 「불효의 누명」을 쓸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그래서 『쓸 수 있는 장기는 누군가 쓸 수 있게 하고 남은 몸일랑 화장하여라』하는 말을 기회있을 때 분명하게 말해두고싶다.〈고문〉
1996-06-2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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