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 호기” 유권자의식 바꾸자(선거풍토 개혁 내손으로:7)

“청탁 호기” 유권자의식 바꾸자(선거풍토 개혁 내손으로:7)

오일만 기자 기자
입력 1996-02-29 00:00
수정 1996-0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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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볼모 취업부탁에 출마자 골치/거절하면 “선거때 보자” 위협까지

이달 중순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종로구 이모의원(60)의 지구당사를 찾았다.지역주민이라는 그는 『8년차 만년과장으로 이번 인사에서 승진을 못하면 사표를 내야할 처지』라는 하소연과 함께 『힘좀 써달라』며 막무가내로 매달렸다.

이의원이 『노력해보겠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의원님이 우리 사장과 고교동창인 것을 알고 왔다』며 은근한 압력도 잊지 않았다.회사고유의 승진문제에 간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아는 이의원은 청탁자의 기분을 상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흔적을 보이며 어물쩍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국민회의 김모 은 평소 2,3일에 한건 정도이던 취업민원이 선거철인 요즘 하루 1∼2건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김의원은 『민원인이 자격요건을 갖췄을 경우 아는 기업인 등에게 부탁하기도 하지만 그렇치 않은 경우엔 말도 꺼내기 어렵다』며 『그렇다고 선거를 앞두고 이들의 청탁을 무시할 수도 없는 현실』이라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선거철이 본격화되면서 이런 인사청탁이 현역의원은 물론 출마예정자들에게까지 쇄도하고 있다.『총선을 앞두고 평소와 달리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평소보다 2배이상 각종 청탁이 몰려든다.더욱이 이번 총선의 경우 졸업시즌에다 많은 기업들의 정기인사와 맞아 떨어지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제고위관리를 지낸 홍재형 위원장(충북 청주상당)은 취업민원인들에게 『낙하산인사로 취직하거나 영전하면 오히려 장래에 해가 된다』고 설득,가급적 완곡하게 거절하고 있지만 홍위원장을 경제통으로 인식하는 지역주민들의 인사청탁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신한국당의 박신범 부대변인(서울강서을)은 『지역주민들이 당원들을 통해 취직을 부탁하며 이력서를 보내오고 있다』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정치 초년생인 나도 이 정도니 다른 중진의원들의 경우는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유권자들의 청탁은 인사에 국한되지 않는다.음주운전 및 교통사고의 해결은 물론 공사참여까지 부탁한다.개개인의 딱한 사정도 있지만 선거철을 맞아 기대감이상대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구 지역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은 김모 위원장은 중소기업인들의 청탁으로 골치를 앓았다.달성군 구지면내 82만평규모의 쌍용자동차공장조성과 관련,공사에 참여시켜 달라는 요청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재벌회장을 지낸데다 「지역발전」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봉」을 잡았다는 유권자들의 인식이 한몫했다는 자체분석이다.

청탁을 받고 뛰어본 경험이 있는 의원들은 해결할 경우 물론 표로 직결되는 덕도 보지만 반대의 경우 『무시한다』는 비난에 직면한다.심지어 『당선되더니 사람이 변했다』는 악선전을 경쟁자들이 고의로 부풀릴 경우 감표요인으로 작용한다.때문에 「애쓰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국회 주변에서는 「의원들의 실력」은 곧 「청탁해결능력」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청탁관행은 사정을 앞세운 지연·학연의 「인치정치」에 그 뿌리가 있다고 진단한다.미국 뉴욕대학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고 국민회의 권로갑의원의 보좌관으로 현실정치에뛰어든 정은성씨(36)는 『한국 특유의 「빽」과 「연줄」이 결합된 정치문화때문에 각종 청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강조한다.

김광호교수(경희대)는 『문민정부에서도 청탁관행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 은 개탄스러운 일이다』며 『한 사람의 청탁이 다른 사람의 공정한 기회를 봉쇄하는 구실을 할때 우리사회의 통합을 해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오일만 기자>
1996-02-2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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