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초 일 어부도“독도는 조선땅”인식/일 시마네현지 기록발표

20세기초 일 어부도“독도는 조선땅”인식/일 시마네현지 기록발표

강석진 기자 기자
입력 1996-02-22 00:00
수정 1996-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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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렵어위해 임대” 청원/“일 측이 10리 더 가깝다” 거짓 측정도 드러나

【도쿄=강석진 특파원】 20세기초 독도를 일본땅에 편입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본인조차 당시 독도를 조선령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발견됐다.

일본명 다케시마인 독도를 관할한다고 하는 일본 시마네현 교육회(교육위원회)가 1923년 펴낸 시마네현지는 『1903년 호키출신의 나카이 요사부로(중정양삼랑)가 이 섬(리앙쿠르바위·프랑스의 리앙쿠르호가 독도를 발견,붙인 이름)의 어렵을 기해 일장기를 세웠다.다음해 각 방면으로부터 경쟁어렵이 있었다.여러가지 폐해가 있었다.이에 나카이는 이 섬을 조선영토라고 생각해 상경해서 농상무성에 말해 대하(조선으로부터) 빌려서 이용하도록 허용함)청원을 냈다』고 말해 당시까지 나카이처럼 독도를 이용하려던 일본인조차 독도를 조선령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령으로 편입한 후 관찬자료에서 일본인조차 독도를 조선령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은 매우 드문 케이스다.

시마네현지는 이어 『일본 해군수로부가 리앙쿠르바위(독도)의 소속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한·일 양국으로부터의 거리를 측정했다』고 적어 당시 일본정부는 독도를 자국령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지에 따르면 일본 해군수로부가 측정한 결과 일본쪽이 10리가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 당시 일본이 독도를 자국령을 편입하기 위해 엉터리로 측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는 6백90쪽 제5장 독도편 첫머리에 일본령 오키섬에서 85리,조선령 울릉도에서 50리라고 기술해놓고 있다.

현지는 그뒤 나카이가 다시 독도의 영토편입과 대하를 내무·외무·농상무성 3성에 청원했으며 이에 일본정부는 독도를 1905년 2월22일 자국령에 편입시켰다고 기술,독도의 영토편입조치가 엉터리측정에 근거해 일방적 조치로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지에는 일본정부가 독도의 영토편입에 대해 조선정부와 협의한 흔적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1996-02-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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