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한벌(외언내언)

누더기 한벌(외언내언)

황석현 기자 기자
입력 1995-11-14 00:00
수정 1995-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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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법어를 남긴 성철대종사는 일생을 「무소유」로 일관한 당대의 큰스님.해인사 백련암에 주석하고 있을 때의 별명은 「가야산 호랑이」였다.대쪽같은 성품과 구도자로서의 몸가짐이 워낙 엄격해 붙여진 별명이다.그가 몸담고 있었던 4평남짓 방에 가구라곤 고색창연한 서안 하나뿐이었고 93년11월4일(음력 9월21일) 세수 82세로 열반할 때 남긴 유품도 누더기 한벌뿐이었다.

30∼40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이 낡아빠진 가사는 성철스님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높고 청정했는가를 보여준 징표다.물질만능과 배금주의에 젖어 있는 세태속에서 이 한벌의 누더기는 청빈한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스님이 열반했을 때 수습된 사리는 1백10과나 되었다.스님은 생전에 제자들을 향해 『내몸에서 사리가 나오거든 모두 허공에 뿌려버려라』고 당부했지만 아직 보존되고 있다.이런 당부는 눈에 보이는 물질로 자신의 법력을 달고 재는 것이 싫었기 때문.그러나 열반직후 해인사에는 스님의 사리를 보기 위해 불자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지금도 줄을 잇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만일 물질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헛된 일』이라고 가르쳤다.지금 우리사회는 노태우씨의 부정축재와 비리로 진흙탕속에 빠져 있다.또 국민은 실의와 좌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이런 때일수록 너나할 것 없이 세속의 욕망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자신의 삶을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

13일은 음력으로 따져 성철스님이 열반한 지 2주기가 되는날.이날을 맞아 스님의 제자들은 사리탑 기공,불교학술상 제정,이웃돕기 자비운동 전개등 다채로운 추모행사를 펼치고 있다.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추모행사보다는 큰 스님이 남긴 「누더기 한벌」의 교훈을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마음닦기에 힘써야 한다는 성철스님의 가르침이 새삼 뜻깊게 느껴지는 오늘이다.<황석현 논설위원>
1995-11-1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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