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여파/사례금 관행 사라진다

비자금 여파/사례금 관행 사라진다

입력 1995-11-11 00:00
수정 1995-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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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 받으면 노씨와 다름없지…” 새 풍조/교사,학부형 촌지 거절 일쑤/관가·병원 급행료 이젠 시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사건이 우리사회 전반을 강타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 오랜 관행으로 남아있던 촌지·사례금 형식의 「검은돈」이 설 땅을 잃어 가고있다.

새 정부들어 각계·각층의 꾸준한 자정노력으로 「촌지문화」가 빛을 바래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뒷전에서는 적으나마 이권에 대한 대가로,또는 인사치레 떡값 명목으로 돈봉투가 오고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 터지고 정치권의 이전투구가 뒤따르면서 「검은돈은 범죄」라는 묘한 등식의 심리가 작용,받는 쪽은 물론 주는 쪽도 이를 꺼리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해마다 입시철을 앞둔 이맘때면 자녀의 장래를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내신성적에 대한 불안한 마음에서 학교를 찾아 교사들에게 돈봉투를 건넸으나 올해는 뚝 끊긴 상태다.

서울 강남 S고교 학부모 이모씨(46·여)는 『입시를 앞둔 아들의 담임교사가 연임돼 올해는 신경을 써서 학교를 찾았는데 지난해때는 두말없이 받아든 촌지를 막무가내로 거절해 당황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단속에 걸리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고 단위는 틀리지만 돈봉투를 받는 것이 뇌물을 챙긴 노씨와 다를 바 없다는 의식이 교직에 확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주위의 얘기를 듣고 그제서야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비자금 사건이후 서울 고려대 부속병원에서도 감사의 표시를 넘어 입원이나 수술을 빨리 받기 위한 급행료 명목의 돈봉투를 아예 없애 버렸다.

담당의사나 간호사들이 예전과 달리 꺼림칙하게 생각해 극구 사양,「너무 적은가」라고 생각하는 환자들과 엉뚱한 마찰을 빚고있기 때문이다.

병원측은 대신 수고한 간호사들에게 음료수등 작은 선물을 하게하거나 헌혈 권유·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모금등의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

검은돈의 위기는 이른바 공직의 「목 좋은 자리」에도 확산되고 있다.

각종 인·허가권은 물론 공사중지·철거명령권을 갖고있는 공무원과 건설현장업자들이 예전과 달리 비자금 사건이후 묘한 동류의식을 갖게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서울지하철 공사현장 P건설 서진권(55)소장은 『최근 감독공무원들이 현장을 찾아와 함께 둘러본뒤 저녁을 함께 했는데 화제는 온통 노씨 비자금 사건이었다』며 『이권을 대가로 엄청난 뇌물을 챙긴데 통탄하면서 속았던 지난날을 서로 위로하고 국가경제의 장래를 걱정했다』고 말했다.

서소장은 『이런 분위기의 자리에서 어떻게 「잘 봐달라」는 돈봉투가 오고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비자금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지역주민들의 성금으로 꾸려나가는 지방의회 의원이나 세밑 온정의 손길이 기다리는 고아원·양로원등은 올 겨울이 유난히 춥고 쓸쓸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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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1-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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