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의 정적 어린듯 신비한 미소/버들잎처럼 긴 눈썹 둥근 콧마루와 연결/정면 응시하느라 실눈… 입은 작고 또렷
경북 경주시 진현동 석굴암 주실 벽에 배치한 3체의 부조 보살상들은 아름답다.특히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천계에서나 행여 만날 수 있을까.이미 깨우쳐 위로부터 보리(보제)의 경지를 구한 보살의 아름다운 모습에는 신비마저 가득 어렸다.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열하나의 얼굴을 지닌 보살상인데,본존여래 뒤쪽에 서 있다.그러나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을 통해 헤아릴 수 있는 얼굴은 열이다.관음보살상 자체가 부조이기 때문에 머리 뒤쪽에 표현할 얼굴 하나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열의 얼굴은 모두 관음보살상 머리에 표현해놓았다.머리 앞쪽에 화불 하나,좌우에 각각 셋,위쪽에 셋,머리 꼭대기에 하나가 배치되었다.
십일면관음보살의 본래 소임은 중생교화다.그래서 중생을 안주시키려는 대자대비한 마음이 얼굴에까지 깃들었다.거친 욕심을 떨쳐버린지 오래여서 표정이 마냥 지순하고 안온할 뿐이다.본존여래처럼 정면을 깊이 바라보느라 실눈을 했지만 눈매가 곱다.버들잎 같은 유엽형의 긴 눈썹이 그리 모나지 않은 콧마루와 맞물렸다.작고 또렷한 입이 고운 눈매와 어울려 살짝 웃음을 자아냈다.
옷 매무새는 하도 부드러워 지순한 얼굴에 비해 오히려 육감적 몸매를 드러내 보였다.그러나 본존여래의 원력을 도와주는 보살을 누가 감히 범접할 것인가.그리고 천계의 정적이 어렸으니 넘나볼 수도 없다.2.18m나 되는 키가 헌출하다.그 큰키의 보살 몸에는 구슬을 꿰어 엮은 여러 가닥의 영락이 치렁치렁 매달렸다.그렇듯 돌을 다룬 솜씨는 보살의 얼굴과 천의자락,영락 등을 더 이상 화강암 걸감대로 버려두지 않았다.
보살은 위를 바라보고 활짝 핀 연꽃 디딤판(앙련대)을 밟고 발을 좌우로 향했다.왼쪽 팔은 구부려 손에 보병을 잡았다.그리고 아래로 내린 왼팔은 팔굽과 홀목을 약간 들어 손가락에 영락 한 가닥을 잡아올렸다.유연한 동작이다.중국과 일본에도 석조나 목조의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전해오지만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따라올 작품은 아무데도 없다.그만큼 세기적 걸작인 것이다.
그 많은 걸작의 조각상들을 봉인한 석굴암은 신라인들의 신앙과 지혜가 함께 창조한 불멸의 문화유산이다.비단 미학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신라인들의 혼이 내재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석굴암 창건을 더러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그것은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세웠다는 「삼국유사」기록에 근거한 것이나,개인적 원력으로만 볼 수 없는 대역사였다.다시 말하면 개인적 발원에 의해 창건되었다기보다는 거족적 발원이 함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석굴암의 조각상은 그 하나하나마다에 조화와 질서가 있다.그 조화와 질서는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동과 정이 어울린 것이다.석굴암을 들여다 볼 때마다 감동이 와 닿는 까닭도 여기 있다.<황규호 기자>
경북 경주시 진현동 석굴암 주실 벽에 배치한 3체의 부조 보살상들은 아름답다.특히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천계에서나 행여 만날 수 있을까.이미 깨우쳐 위로부터 보리(보제)의 경지를 구한 보살의 아름다운 모습에는 신비마저 가득 어렸다.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열하나의 얼굴을 지닌 보살상인데,본존여래 뒤쪽에 서 있다.그러나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을 통해 헤아릴 수 있는 얼굴은 열이다.관음보살상 자체가 부조이기 때문에 머리 뒤쪽에 표현할 얼굴 하나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열의 얼굴은 모두 관음보살상 머리에 표현해놓았다.머리 앞쪽에 화불 하나,좌우에 각각 셋,위쪽에 셋,머리 꼭대기에 하나가 배치되었다.
십일면관음보살의 본래 소임은 중생교화다.그래서 중생을 안주시키려는 대자대비한 마음이 얼굴에까지 깃들었다.거친 욕심을 떨쳐버린지 오래여서 표정이 마냥 지순하고 안온할 뿐이다.본존여래처럼 정면을 깊이 바라보느라 실눈을 했지만 눈매가 곱다.버들잎 같은 유엽형의 긴 눈썹이 그리 모나지 않은 콧마루와 맞물렸다.작고 또렷한 입이 고운 눈매와 어울려 살짝 웃음을 자아냈다.
옷 매무새는 하도 부드러워 지순한 얼굴에 비해 오히려 육감적 몸매를 드러내 보였다.그러나 본존여래의 원력을 도와주는 보살을 누가 감히 범접할 것인가.그리고 천계의 정적이 어렸으니 넘나볼 수도 없다.2.18m나 되는 키가 헌출하다.그 큰키의 보살 몸에는 구슬을 꿰어 엮은 여러 가닥의 영락이 치렁치렁 매달렸다.그렇듯 돌을 다룬 솜씨는 보살의 얼굴과 천의자락,영락 등을 더 이상 화강암 걸감대로 버려두지 않았다.
보살은 위를 바라보고 활짝 핀 연꽃 디딤판(앙련대)을 밟고 발을 좌우로 향했다.왼쪽 팔은 구부려 손에 보병을 잡았다.그리고 아래로 내린 왼팔은 팔굽과 홀목을 약간 들어 손가락에 영락 한 가닥을 잡아올렸다.유연한 동작이다.중국과 일본에도 석조나 목조의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전해오지만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따라올 작품은 아무데도 없다.그만큼 세기적 걸작인 것이다.
그 많은 걸작의 조각상들을 봉인한 석굴암은 신라인들의 신앙과 지혜가 함께 창조한 불멸의 문화유산이다.비단 미학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신라인들의 혼이 내재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석굴암 창건을 더러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그것은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세웠다는 「삼국유사」기록에 근거한 것이나,개인적 원력으로만 볼 수 없는 대역사였다.다시 말하면 개인적 발원에 의해 창건되었다기보다는 거족적 발원이 함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석굴암의 조각상은 그 하나하나마다에 조화와 질서가 있다.그 조화와 질서는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동과 정이 어울린 것이다.석굴암을 들여다 볼 때마다 감동이 와 닿는 까닭도 여기 있다.<황규호 기자>
1995-08-2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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