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석의 재벌인사/박은호 사회부 기자(현장)

피고인석의 재벌인사/박은호 사회부 기자(현장)

박은호 기자 기자
입력 1995-07-29 00:00
수정 1995-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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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뇌물공여 추궁에 연신 땀만…

28일 하오2시 서울지법 311호 중법정.수의차림에 다소 초췌한 이형구 전노동부장관과 재판부에 의해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넘겨진 10개 회사 회장 및 대표도 피고인석에 함께 앉아 있었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전봉진 부장판사)는 이 때문인지 처음부터 재판을 의미심장하게 진행해나갔다.

이 재판이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예상을 입증하듯 변호인의 신문도중 갑자기 재판장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법정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1백여명의 방청객도 깜짝 놀랐다.

『변호인의 질문취지는 무슨 이유로 돈을 주었느냐는 겁니다.그걸 이해 못하겠어요?』

『……』

재판장인 전부장판사의 추궁은 계속 이어졌다.

『피고인은 돈을 건네준 행위가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습니까.마치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저… 법에 저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변호인의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자 답변을 거부한 홍성산업사장 박성철 피고인이 불만스러운 몸짓으로 「무언의 항변」을 하다 끝내재판장의 엄한 추궁을 듣고 말았다.그는 흘러내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훔쳐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범법사실」을 시인했다.

이처럼 재판장이 엄하게 꾸짖자 국내 재계의 내로라하는 인사 10명도 피고인석에서 한결같이 고개를 떨구었다.당초 재판이 시작되기 전 팔짱을 끼고 방청석에 앉아 서로 담소를 나누며 웃음조차 흘리던 여유로운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공판에서는 검찰의 구형을 두고 담당검사와 법원 사이에 신경전도 빚어졌다.

이 사건 주임검사인 김성호 대검중수2과장은 당초 약식기소한대로 벌금 1백만원을 구형했다.

재판장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검찰의 약식기소를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고 정식재판에 회부했는데 달리 의견을 내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지만 답변은 『구형을 그대로 유지하겠습니다』였다.

이날 공판에서는 재벌과 검찰·변호인이 뜻을 같이 한 반면 재판부는 왠지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1995-07-2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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