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눈/석지명 청계사주지·철학박사(굄돌)

슬픔의 눈/석지명 청계사주지·철학박사(굄돌)

석지영 기자 기자
입력 1995-03-19 00:00
수정 1995-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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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에 바둑을 두다가 크게 마음이 상한 적이 있다.중요한 고비에서 상대가 물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상대는 과거에 물려주고 받은 예를 들었고 나는 그 한 수가 승패를 결정한다고 주쟁했다.결국 우리는 그 바둑을 흩어버리고 말았다.

겉으로 점잖은 모양을 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이 감정싸움에 말려든 것을 본 일이 있다.각기 두 사람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상대는 아주 약한 인간이라는 것,혼자 있을 때는 외로워하고 몸과 마음이 다칠 때는 아파하고,결국 죽게 될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그런데 각종 보도에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잘 되었다는 말을 여러번 접하면서 왜 사람들이 그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드라마의 작가나 연출가가 돈과 권력과 폭력으로 이루어지는 추악한 현실을,슬픔을 눈으로 본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출연하는 인간 군상은 이래저래 악에 물들어 있거나,아무리 순진하고 정의로운 척하는 사람도 그러한 처지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악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그러나 그 모두는 아주 약하디약한 사람들이다.슬픈 사람들이다.그들이 이룬 모든 것은 남김없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모래시계를 뒤집어놓는 것처럼,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고집·억지·무지·악의 야망 등을 슬픔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세상 어떤 사람에 대해서든지 연민의 마음을 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1995-03-1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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