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귀로만 들어오던 레오 카락스의 영화 「나쁜 피」를 보았다.영화 비평가가 아니므로 주제넘은 소리를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 나는 「예술」 「대중」 「권력」이라는 해묵은 자기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다.90년대 들어 폭발적인 문화수요가 일어나면서 이른바 매니아 집단들이 형성되고 있다.영화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컴퓨터 통신을 통한 동호인 모임이 있는가하면 미개봉 필름만 상영하는 소수 단체도 있는 모양이다.쉽게 말하면 일반대중의 문화감식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는 얘기다.「나쁜 피」는 말하자면 개봉되기 오래전부터 매니아 집단사이에서 돌려보곤 하던 그런 영화중의 하나다.
누벨 이마주라는 배지를 단 이 영화는 줄리에트 비노쉬,데니 라방,줄리 델피 같은 일류급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고 「퐁네프의 연인들」을 만든 레오 카락스가 25살에 완성시킨 영화다.그 때문에 현란한 수사학적 용어가 동원돼 마치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대뜸 문화 게으름뱅이 같은 취급을 받을 정도다.인간관계의 단절,서로 수혈이 불가능한 사랑,환상과 현실사이의 부조리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카메라 워크로 관객을 사로잡는다.특히 삼원색을 주로 사용한 강렬한 톤의 화면과 다소 경직된 듯한 배우들의 연기는 주제의 한도를 비집고 나와 사건의 연속성마저 깨뜨려버릴 정도다.
어쨌든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표정은 대개가 석연치가 못하다.난해하다는 뜻일 것이다.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예술 장르라는 영화가,거꾸로 가장 예술적이라는 상업적 용어로 포장돼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형국이다.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예술 이데아 폼목의 필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그렇다면 예술도 권력인가? 물론 그렇다.대중을 억압하는,혹은 겉으론 억압하지 않지만 뒤에서 대중을 유혹하고 이용하는 예술은 모두가 「나쁜 피」를 가진 권력이다.여기에 「예술」을 지향하면서 일반 대중과 민중을 정신적 기반으로 삼아야 하는 창작자들의 고민과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누벨 이마주라는 배지를 단 이 영화는 줄리에트 비노쉬,데니 라방,줄리 델피 같은 일류급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고 「퐁네프의 연인들」을 만든 레오 카락스가 25살에 완성시킨 영화다.그 때문에 현란한 수사학적 용어가 동원돼 마치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대뜸 문화 게으름뱅이 같은 취급을 받을 정도다.인간관계의 단절,서로 수혈이 불가능한 사랑,환상과 현실사이의 부조리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카메라 워크로 관객을 사로잡는다.특히 삼원색을 주로 사용한 강렬한 톤의 화면과 다소 경직된 듯한 배우들의 연기는 주제의 한도를 비집고 나와 사건의 연속성마저 깨뜨려버릴 정도다.
어쨌든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표정은 대개가 석연치가 못하다.난해하다는 뜻일 것이다.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예술 장르라는 영화가,거꾸로 가장 예술적이라는 상업적 용어로 포장돼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형국이다.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예술 이데아 폼목의 필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그렇다면 예술도 권력인가? 물론 그렇다.대중을 억압하는,혹은 겉으론 억압하지 않지만 뒤에서 대중을 유혹하고 이용하는 예술은 모두가 「나쁜 피」를 가진 권력이다.여기에 「예술」을 지향하면서 일반 대중과 민중을 정신적 기반으로 삼아야 하는 창작자들의 고민과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1994-12-2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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