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도둑」이 점잔빼고 큰소리 친다(박갑천칼럼)

「낮도둑」이 점잔빼고 큰소리 친다(박갑천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4-11-27 00:00
수정 1994-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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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갑 천 칼럼 도둑을 곁말로 밤손님이라 한다.야객도 그 뜻이다.그들 스스로도 밤이슬 털고 다니는 신세라고 한탄한다.도둑은 그렇게 밤과 연관되고 도둑질은 밤에 하는 것으로 돼있다.

그러니까 저 후한때의 양상군자도 밤손님이었다.진식이라는 청백리가 태구현의 지사로 있을때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있던 어느날밤 진식의 방 들보 위에 숨어들었던 도둑말이다.양상군자란 바로 「들보위의 군자」.진식이 일부러 그렇게 부르자 이 밤손님은 내려와 엎드려 사죄한다.이 일로 해서 도둑을 양상군자라 하는데 나중에는 쥐를 가리키면서도 쓰인다.

이런 밤손님에는 「순진한」면이 있다.위의 양상군자같이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주인의 기침소리에 놀라 내빼기도 한다.또 판서집이라 해서 잘사는 줄 알고 침입했더니 춤칠것이 없는지라 오히려 제가 훔친 돈꾸러미를 놔두고 나왔다는 도둑의 경우도 있다.도척이 도둑에게도 다섯가지 도 (성·용·의·지·인)가 있다고 했던 「고전판도둑」의 경우라고나 할까.

물론 도둑질은 밤에만 한다고 못박혀 있는건 아니다.낮에도 한다.소매치기·들치기·팍치기….때로는 사람에게 상해도 입히니 밤손님 시절과는 달라진다.그런데 이들보다 훨씬 더 악랄하면서도 배터지게 훔치는 낮도둑들은 말쑥하게 차려입고 책상에 앉아 사무를 본다.도둑이라니.직함에 「장」자 달고 얼마나 똑똑 하며 점잔 빼는데.

이 「낮도둑」이란 말은 옛날에도 있었다.함경도등 북방의 병사나 수령들을 가리키면서 백성들이 그리 불렀다.조정과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감시의 손길도 멀었으니 대낮에 관복 입고 버젖이 하는 도둑질이 아니었겠는가.그 시절 북도쪽 시골사람이 서울엘 왔다.그는 성균관앞에 이르러 함께온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는 대체 어느 고을이기에 관청집이 이렇게 높고 넓은가』

상대방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건 고을이 아닐쎄.조정에서 「낮도둑」들을 모아놓고 기르는 곳이라네』

「송와잡설」에 적혀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인천에서 세금 도둑질 사건이 터졌을때 국민들은 대뜸 이런 말을 했다.­『다른데라고 해서 무사할라고? 재수없는 곳이 먼저 걸렸겠지』.그같은 국민의 의혹이 사실로서 나타난다.부천시에서 영등포 구청에서 또 어디서….이 낮도둑들은 국민의 혈세만 도둑질해 간것이 아니다.그들은 우리 사회의 신의와 착하게 살려는 의욕까지를 도둑질해 갔다.그죄가 크다.그런 낮도둑이 과연 다른데는 없는 것인가.
1994-11-2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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