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김정일세력 폭동 일으킬 가능성”/김정숙·김영주 실각 판단은 성급/지원하되 체제안정엔 도움 안되게
모스크바국립종합대 부설 모스크바국제종합학교 이사장으로 있는 허진씨(67)는 4일 김일성사후 북한정세를 한마디로 「진퇴양난」이라고 진단했다.
허씨는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우선 김일성사망후 후계자로 지목됐으나 아직 정권을 잡지 못한 김정일측 세력과 이에 대한 김일성의 처 김정숙과 동생 김영주,김정일 이복동생 김평일등 반김정일세력이 모두 상대세력에 대항할 만한 뚜렷한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한 점을 제시했다.
이런 상태에서 권력쟁취를 위해 섣불리 상대방비판등 무리한 행동을 감행하다가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유린당할 우려가 있어 뾰족한 「수」를 쓸 수 없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허씨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북지원은 『기본적으로 독재자 권력연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의 폭동등 북한내 김정일반대세력들의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면서 『북한인민은 군부대폭동이 일어나 군사독재가 되더라도 김정일독재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 두려움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허씨는 북한소식 입수경로에 관해 『북한 왕래객과 중국서 나온 신문이 고작일 정도로 뾰족한 수가 없다』면서 『특히 북한내에서도 김일성의 아들·처 이름을 제대로 모르는 인민이 많을 정도로 정보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북한사회의 폐쇄성을 지적했다.
허씨는 이와 함께 93년12월2일 김일성이 김정일을 불러 후계자지위를 박탈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즉 노동당관계는 자신과 김성애가 맡고 김정일에게는 군사관계만 맡기려 했다는 것이다.
허씨는 이와 관련,『현재 김정일이 갖고 있는 국방위원회위원장 자리는 병기관리등 군수산업분야에 국한된 것이며 국가방위전략및 전술수집을 담당하고 있는 군사위원회위원장 자리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채 오진우와 함께 부위원장으로 있다』고 덧붙였다.
허씨는 또 북한의 핵무기보유설에 대해서도 『1∼2개정도 보유가능성은 있으나 그렇다 할지라도 운반수단이 없는데다 아직 한번도 실험을 해보지 못한 쓸모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허씨는 특히 방한중인 중국의 이붕 총리가 김정일체제 안정이 중요한 만큼 한국이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 『세습정권을 도와줘야 한다는 발상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소련자연과학원 원사(정회원)로 명예문학박사이기도 한 허씨는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나 광복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가 민주청년동맹 평양시위원회 간부및 북조선 내무성 정치국 고급장교로 근무했다.그는 52년 모스크바국립영화대학에서 극문학·시나리오문학을 배웠다.
그는 스탈린 격하문제가 제기된 56년2월 소련공산당 20차대회에 참가,김일성 개인숭배사상의 허구성을 깨닫고 김일성반대운동에 나섰다.
허씨는 『모스크바의 북조선 유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김일성의 개인숭배사상을 비판했으며 이 때문에 모스크바 북한대사관에 체포돼 강제이송당할 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57년11월27일 북한 보안요원에 붙잡힌 허씨는 다행히 대사관 2층사무실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이후 김일성세습체제반대운동에 앞장섰으며 82년 「북조선왕조성립비사」란 김일성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자신의 호인 임은 명의로 내 김일성의 실상을 파헤치기도 했다.
『대전 과학공원을 동료들과 구경하고 조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알 수 있었다』는 허씨는 4일 모스크바로 돌아갔다.<박현갑기자>
모스크바국립종합대 부설 모스크바국제종합학교 이사장으로 있는 허진씨(67)는 4일 김일성사후 북한정세를 한마디로 「진퇴양난」이라고 진단했다.
허씨는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우선 김일성사망후 후계자로 지목됐으나 아직 정권을 잡지 못한 김정일측 세력과 이에 대한 김일성의 처 김정숙과 동생 김영주,김정일 이복동생 김평일등 반김정일세력이 모두 상대세력에 대항할 만한 뚜렷한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한 점을 제시했다.
이런 상태에서 권력쟁취를 위해 섣불리 상대방비판등 무리한 행동을 감행하다가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유린당할 우려가 있어 뾰족한 「수」를 쓸 수 없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허씨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북지원은 『기본적으로 독재자 권력연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의 폭동등 북한내 김정일반대세력들의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면서 『북한인민은 군부대폭동이 일어나 군사독재가 되더라도 김정일독재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 두려움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허씨는 북한소식 입수경로에 관해 『북한 왕래객과 중국서 나온 신문이 고작일 정도로 뾰족한 수가 없다』면서 『특히 북한내에서도 김일성의 아들·처 이름을 제대로 모르는 인민이 많을 정도로 정보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북한사회의 폐쇄성을 지적했다.
허씨는 이와 함께 93년12월2일 김일성이 김정일을 불러 후계자지위를 박탈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즉 노동당관계는 자신과 김성애가 맡고 김정일에게는 군사관계만 맡기려 했다는 것이다.
허씨는 이와 관련,『현재 김정일이 갖고 있는 국방위원회위원장 자리는 병기관리등 군수산업분야에 국한된 것이며 국가방위전략및 전술수집을 담당하고 있는 군사위원회위원장 자리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채 오진우와 함께 부위원장으로 있다』고 덧붙였다.
허씨는 또 북한의 핵무기보유설에 대해서도 『1∼2개정도 보유가능성은 있으나 그렇다 할지라도 운반수단이 없는데다 아직 한번도 실험을 해보지 못한 쓸모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허씨는 특히 방한중인 중국의 이붕 총리가 김정일체제 안정이 중요한 만큼 한국이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 『세습정권을 도와줘야 한다는 발상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소련자연과학원 원사(정회원)로 명예문학박사이기도 한 허씨는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나 광복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가 민주청년동맹 평양시위원회 간부및 북조선 내무성 정치국 고급장교로 근무했다.그는 52년 모스크바국립영화대학에서 극문학·시나리오문학을 배웠다.
그는 스탈린 격하문제가 제기된 56년2월 소련공산당 20차대회에 참가,김일성 개인숭배사상의 허구성을 깨닫고 김일성반대운동에 나섰다.
허씨는 『모스크바의 북조선 유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김일성의 개인숭배사상을 비판했으며 이 때문에 모스크바 북한대사관에 체포돼 강제이송당할 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57년11월27일 북한 보안요원에 붙잡힌 허씨는 다행히 대사관 2층사무실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이후 김일성세습체제반대운동에 앞장섰으며 82년 「북조선왕조성립비사」란 김일성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자신의 호인 임은 명의로 내 김일성의 실상을 파헤치기도 했다.
『대전 과학공원을 동료들과 구경하고 조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알 수 있었다』는 허씨는 4일 모스크바로 돌아갔다.<박현갑기자>
1994-11-0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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