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인수 공청회/정종석 경제부차장(오늘의 눈)

아전인수 공청회/정종석 경제부차장(오늘의 눈)

정종석 기자 기자
입력 1994-08-23 00:00
수정 1994-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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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국밥 공청회」,「반쪽 공청회」.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를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놓고 정부와 재계가 각각 따로 공청회를 갖기로 한 것을 빗대는 얘기들이다.서로 아전인수격의 치열한 선전전을 펴는 것이 최선이라고 작정한 듯 하다.

공정거래위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기에 앞서 지난 달 29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주관으로 정책협의회를 연 데 이어 또다시 오는 30일 공청회를 갖는다고 발표했다.사실상 공청회 성격의 행사를 두번이나 개최하는 셈이다.입법예고 당시엔 예정조차 없었던 공청회이고 그 날짜도 이례적으로 입법예고 기간(9일∼28일)이 지난 뒤이다.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을 보자.개정안의 내용이 잘못됐다며 정부를 맹공하더니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당초 지난 17일 열려던 공청회를 갑자기 9월1일로 연기했다.이 결정은 조규하 전경련 부회장이 한리헌 경제기획원 차관과 오세민 공정거래위원장을 만난 직후 내려졌다.뒤늦게 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몸조심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와 재계가 합동 공청회를 여는 것이다.같은 취지의 공청회인데도 시간 따로,장소 따로의 개별 행사를 갖는 것은 낭비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이유에는 서로 입을 다문다.양측은 이미 합동 공청회를 포기한 상태이다.헤어지기를 작정한 부부가 이혼 수속을 밟는 인상이다.

전경련은 양측이 서로 의견을 밝힐 수 있는 합동 공청회를 제의했으나 공정위가 거절했다고 불만이다.반면 공정위는 『전경련의 주장은 자기네 공청회에 정부가 참석해 달라는 것으로,들러리를 부탁하는 것』이라며 불신한다.양 쪽의 주장이 마냥 평행선이다.

재벌의 소유분산을 촉진하려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취지에는 정부나 재계 모두가 이해를 같이 한다.시기와 방법론에 이견이 있을 뿐이다.문제는 정부와 재계가 어떻게 하다 공청회 하나를 함께 못 할 정도로 상대방을 불신하는 지경이 됐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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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08-2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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