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나이테/손정박 한국스포츠 TV감사(굄돌)

인생의 나이테/손정박 한국스포츠 TV감사(굄돌)

손정박 기자 기자
입력 1994-04-22 00:00
수정 1994-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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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송이나 잣나무는 굳이 나이테가 아니더라도 곁가지 뻗쳐 나간 마디 마디가 정확하게 나이를 말해준다.고추대궁은 한마디 끝나면 세 마디로 갈라지고 그 곳에 몽실한 고추 한개씩 어김없이 매달린다.

우리 인생도 유아기나 청소년기다 해서 나이에 따라 마디를 나눈다.알 두꺼운 돋보기로도 신문 읽을 수 없어 따로 돋보기 준비한 지 오래됐으니까 소위 노안인생,노연기에 접어든 게 틀림없다.10년 쯤 초로인생 끝나면 노쇠기 10년정도 버티다가 휴거자격도 갖추질 못했으니 귀소,땅 속으로 돌아가겠지.이것도 제대로 됐을 때 얘기지,저승사자가 아무런 기미도 안보이다가 느닷없이 동행증 내보이기 좋아하는 요즘에야 가히 지금 숨쉬니까 살아있다고나 할까.

남은 삶을 마음 아리도록 소중하게 여길 수 밖에 없으니 타령조는 그만하자.언젠가 어느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했다.신학도에서 전도사·목사로 생활해 오면서 갈수록 설교에 어려움 느낀단다.산을 오를라치면 점점 먼데까지 보이고 더 넓게 보인다.산 아랫자락에서는 나무 하나하나 계곡바위 이것저것신경쓰다가,중턱쯤 오르면 이마에 손대고 눈 멀리 띄우고,정상에 오르면 몸 돌려가며 사방을 살피게 된다.마찬가지로 세상 보는 눈,성경해석하는 마음,설교 내용도 연륜따라 달라진다.따라서 우기는 마음 줄어들고,확정적인 말 하기 겁나고,듣는 시간 길어진다.그러나 비록 온전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어느 시점에서 최선이라고 여겨지는 것,더불어 함께 갖고 싶은 것,말 안하고는 배길수 없는 것을 마음 활활 태우면서 온 몸으로 얘기해야만 한단다.

그렇다.마음 불살라 몸 거칠게 떨면서 용암 쏟아져 나오듯 토해내고 싶은 그런 얘기가 있을 성도 싶다.아니 속으로 속으로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언젠가 확 번져 거센 불소리 내며 타오를 그런 얘기가 있다.

해방 전후는 태교와 잠재의식 속에서나 알 뿐이지만 그 이후 현대사의 모든 것을 현장에서 똑똑히 보고,한 가운데서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우리들인데 왜 할 말이 없겠는가.길게 한번 울어 숨 넘어가도 좋으련,피울음 우는 접동새보다 더 애절하게 해야 할 얘기가 있다.인생의 마지막 마디 매듭짓기 전에.

1994-04-2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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