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왜곡해서 묘사했다는 미국영화 「추락」이 극장개봉을 앞두고 결국 추락했다.
단순히 결과만 놓고보면 한국인의 자존심이 승리한듯 싶기도 하고,전세계 영화인을 향해 앞으로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그릴 생각이 있다면 그런 영화는 한국상영을 꿈도 꾸지 말라는 대단한 교훈을 남긴듯 싶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추락」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은 공중전화를 걸려던 주인공이 부근 한인상점에 들어가 잔돈을 바꾸어 달랬다가 주인이 거절하자 난동을 부린다는 대목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이것이 사실이라면 「추락」이란 영화가 한국인을 왜곡묘사했다고 몰아세운데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서울 시내에서 어느 상점에나 들어가 한번 잔돈을 바꾸어 달라고 해보자.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잔돈을 건네주는 주인을 좀체로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요즘 세태다.이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미국에 건너가 장사하는 한인 가운데 이런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한 사람도 간혹 있을 터이니 오죽했으면 영화에 에피소드로 등장까지 했겠는가?
그렇다면 「추락」이 한국인을 왜곡했다는 혐의는 무죄가 된다.
또 하나.이것은 중요한 문제다.바로 창작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추락」이 진짜로 한국인을 왜곡묘사했다고 치자.그렇다고 해서 여론의 힘을 빌려 또는 여론을 유도하여 영화의 상영을 자진 철회토록 압력을 가하는 일은 잘못된 일이다.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싶어하는 관객이 한국내에 한명이라도 있다면 이 사람의 볼 권리를 그런식으로 침해해도 되는 것일까? 특정집단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문제가 된 작품의 발표기회를 빼앗는 것이 옳은 행동일까?
이를 두고 어떤 평론가는 얼마전에 이런 글을 발표했다.
『미국영화,그것도 꼴도 보기 싫은 직배영화,게다가 한국인을 무시하는 듯한 못되먹은 「추락」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일 때 창작자유의 지평은 확대되고 우리의 영화문화도 성숙할 수 있다』
어느쪽이 옳겠는가?
단순히 결과만 놓고보면 한국인의 자존심이 승리한듯 싶기도 하고,전세계 영화인을 향해 앞으로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그릴 생각이 있다면 그런 영화는 한국상영을 꿈도 꾸지 말라는 대단한 교훈을 남긴듯 싶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추락」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은 공중전화를 걸려던 주인공이 부근 한인상점에 들어가 잔돈을 바꾸어 달랬다가 주인이 거절하자 난동을 부린다는 대목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이것이 사실이라면 「추락」이란 영화가 한국인을 왜곡묘사했다고 몰아세운데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서울 시내에서 어느 상점에나 들어가 한번 잔돈을 바꾸어 달라고 해보자.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잔돈을 건네주는 주인을 좀체로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요즘 세태다.이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미국에 건너가 장사하는 한인 가운데 이런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한 사람도 간혹 있을 터이니 오죽했으면 영화에 에피소드로 등장까지 했겠는가?
그렇다면 「추락」이 한국인을 왜곡했다는 혐의는 무죄가 된다.
또 하나.이것은 중요한 문제다.바로 창작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추락」이 진짜로 한국인을 왜곡묘사했다고 치자.그렇다고 해서 여론의 힘을 빌려 또는 여론을 유도하여 영화의 상영을 자진 철회토록 압력을 가하는 일은 잘못된 일이다.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싶어하는 관객이 한국내에 한명이라도 있다면 이 사람의 볼 권리를 그런식으로 침해해도 되는 것일까? 특정집단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문제가 된 작품의 발표기회를 빼앗는 것이 옳은 행동일까?
이를 두고 어떤 평론가는 얼마전에 이런 글을 발표했다.
『미국영화,그것도 꼴도 보기 싫은 직배영화,게다가 한국인을 무시하는 듯한 못되먹은 「추락」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일 때 창작자유의 지평은 확대되고 우리의 영화문화도 성숙할 수 있다』
어느쪽이 옳겠는가?
1994-04-0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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