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들의 평복(외언내언)

정상들의 평복(외언내언)

입력 1993-11-23 00:00
수정 1993-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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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신사복은 상의 베스트 슬랙스를 각기 다른 소재로 만들어 입었다.상의는 빳빳하고 베스트는 호화찬란하며 슬랙스는 유연하고 신축성이 있어야 한다.빅토리아여왕의 부군인 린스 앨버트공의 이름을 따서 이옷은 앨버트 재킷으로 불리었다.

1820년대 웰링턴공은 브리치 대신 보통차림으로 자신의 알마크 클럽에 갔다가 입장을 거절당했다.같은 무렵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에선 학생이 긴바지를 입고 등교하면 결석으로 취급했다.

20세기가 반이상 지나갈 무렵 복장의 터부는 턱없이 무너져 유행의 지배자는 이미 왕족이 아니라 인기가수나 배우들이 되고 있다.엊그제 폐막된 미시애틀 연안 블레이크섬의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는 각국 수뇌들의 자유로운 옷차림으로 인해 온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영삼대통령은 빨간 가디건에 체크무늬 상의를 입었고 호소카와 일총리는 회색의 네크라인 스웨터,클린턴 미대통령은 가죽잠바에 헐렁한 바지등 하나같이 파격적인 옷차림이다.이제까지 수많은 정상회담을 보아왔지만 넥타이에 양복차림 아닌 평상복은 획기적인 일이 아닐수 없다.

부드러운 옷차림은 격의와 격식을 없앤다.근엄한 형식주의와 의식은 그 나름대로 긴장감을 주지만 그 지나침은 허례허식에 그치기 쉽다.우리는 이미 외국국빈 방한때 대통령이 턱시도를 입지 않기로 했고 지난번 경주 한일회담에서 평상복으로 마주한바 있다.

옷은 그 사람을 만들고 그날의 기분도 옷이 좌우한다.이색적인 통나무집에서 다리를 겹친채 담소하는 분위기는 얼었던 경직을 풀고 한줄기로 흘러가는 오늘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방심한듯한 웃음속에 감추어진 팽팽한 긴장감,각자 이해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신경은 저마다의 계산으로 곤두서 있으리라.내심에 도사린 의미는 자유로운 의상만큼이나 질감이 다를지 모르지만 「열린 개방주의」의 강력한 표방을 그곳에서 읽게 된다.
1993-11-2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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