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없는 가명도 적지않을 것을(박갑천칼럼)

악의없는 가명도 적지않을 것을(박갑천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3-08-25 00:00
수정 1993-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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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면의 남녀끼리 잠깐 문학으로 화제를 돌렸던듯하다.「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었느냐는 한쪽의 물음에 대해 상대방이 한 대답인즉­『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미처 못읽었군요』.한자리 우스개치고는 너름새가 있다.

이 우스개의 틀을 그대로 좇아본다면 서화얘기 끝에 이렇게 말한다고 할수가 있겠다.

『예,추사에 대해선 좀 알고 있습니다만 완당은 미처…』

추사나 완당이나 실학자이자 서법의 대가인 김정희의 호가 아니던가.그의 호는 1백가지 가까이나 쓰였다 한다.몇가지 적어보면­ 예당·시암·노과·농장인·천축고선생·노완·금천(금천)·삼십육구초당·고계림인·동방유일사·해당화하희아손·나가산인·소봉래학인·매화구주·묵소거사·승설학인·단파거사·승련노인… 등등.

옛사람들에게는 이름이 많았다.이름의 가짓수부터 그렇다.정식이름이라고 할 항렬에 따르는 관명이 있기 전의 아명이 있고 자가 있으며 호·별호가 있고(그것도 여럿)벼슬이 높을 때는 시호까지 있다.고종황제의 관명은 희이지만 아명은 장수하라는 뜻에서 개똥이또는 명복이라고도 했다.이순신의 자는 여해이고 시호는 충무이다.

호가 여럿인 경우는 김정희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가령 양광의 생육신 김시습 만해도 동봉·매월당·청한자·벽산청은·췌세옹외에도 설잠이라는 법호까지 지니고 있었다.하기야 금강산같이 이름많은 산도 있다.봄은 꽃이 뒤덮여 「금강」이며 여름은 계곡마다 녹음이 깔려 봉래이고 가을은 단풍이 고와 풍악이며 겨울은 뼈만 앙상하기에 개골이 되는것 아니던가.그러고도 열반·지달같은 이름이 더 있다.



실명제라는 것 때문에 시끄럽다.실명이란 곧 관명.그 관명아닌 이름으로 은행거래한 사람들이 가짜이름 많은죄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추사선생이 오늘에 살아있다면 「김정희」란 이름으로만 은행거래를 했을 것인지 어쩐지.본디 「이름명명」자는 어두움과 관계가 있다.어두운저녁(석)에 제이름을 입(구)으로 알려 남을 불러세웠대서 생겨난 글자이니 말이다(설문).숱한 가명은 그 「어둠속의 입」이던가.그렇다 해도 악의없는 가명도 적지않을 것을.<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08-2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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