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약속의 소중함/김규희 청주국교 교사(교창)

작은 약속의 소중함/김규희 청주국교 교사(교창)

김규희 기자 기자
입력 1993-03-18 00:00
수정 1993-03-18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선생님은 거짓말쟁이』

『책가방도 없는데 아침자습을 써 놓으면 어떻해…』

종식은 울면서 책가방을 가지러 집으로 달려갔다.울면서 지껄이면서 달려가는 종식이를 동료 주선생님이 겨우 달래서 교실로 보냈단다.도시락만 가져오라던 선생님이 칠판에 공부할 것을 써 놓았으니 말이다.책가방은 집에 두고 왔으니 어찌 칠판에 써놓은 자습을 한단말인가?

주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교실로 달려가니,눈물로 범벅이 된 종식이와 몇아이가 있었다.

『선생님,책가방은 가져오지 말라고 했잖아요.어떻게 공부를 해요』

훌쩍거리면서 종식이가 내게 한 말이다.

『선생님 진짜 바보예요.바보.또,그러면 안돼요.선생님,약속해요』

손가락으로 약속을 하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는다.

얼마나 귀엽고 앙증스러웠던지……

지난 어린이날 전날 있었던 일이었다.

어린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소체육회를 갖기로하고 며칠동안 연습한 게임을 겨루기 위하여 도시락만 가지고 등교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입학한지 두달.가정에서 자유롭게 생활해오던 아이들의 생활 공간이 갑자기 커지고 집단생활이라는 제약된 공간으로 바뀌었으니 어찌 조용하겠는가? 도시락만 가져왔는데,필기구도 없는데,자습은 무엇으로 하라고 했을까? 얼마나 놀랬으면 눈물이 뚝뚝뚝,울면서 지껄이면서 집으로 달려가는 소동이 벌어졌겠는가?

혹시 비라도 내리면 책가방을 가져올테니 자습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써 놓았던거다.그 아이들편에 서서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교사였다면 그런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을거다.아직은 보잘것 없고,작은 아이들에 불과하지만 꿈은 있다.분명 머릿속에는 멋진 꿈이 있다.그 꿈을 살찌워 키워나가며 소중하게 자랄 아이들이다.아기의 눈과 같은 순수한 꿈을 가진 이 아이들에게,사랑과 향기로 그득찬 교실을 만들어 주려던 내가 아니었던가?

지금도 종식이를 보면 그날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웃음짓게 한다.

사랑을 실천하고 옮음을 실천하는 그런 실천인으로 길러주려고,오늘도 마라토너처럼 달려가고 있다.

아이는 당신을 그대로 배운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와 같다는 사실 또한 잊으면 안된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않을 종식이의 순수한 마음처럼,영원히 변치않을 사랑과 향기로 그득찬 교실의 넉넉함을,어려운 일은 내가 먼저하는 그런 아이들을,나같이 아주 작은 일도 무심하게 보아 넘기지 않는 그런 아이로 가르치고 싶다.

최선을 다했을때 박수주고,성장의 결실을 공정하게 보상해주는 그런 교사가 되면 바보라고는 안하겠지.
1993-03-18 1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결혼식 생략? '노웨딩'에 대한 여러분 생각은?
비용 문제 등으로 결혼식을 생략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웨딩에 대한 여러분은 생각은?
1. 결혼식 굳이 안해도 된다.
2. 결혼식 꼭 해야 한다.
-->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